진주성-조조의 관용
진주성-조조의 관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7.29 15: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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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조조의 관용

옛 역사를 통해 통 큰 용서를 음미해 보고자 한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는 어제의 적이 오늘의 동지가 되고, 오늘의 동지가 내일이면 창칼을 겨누는 적이 될 수도 있으니 참으로 비참하고 냉혹한 것이 전쟁인가보다.

춘추전국시대가 끝나갈 무렵 하남성 출신의 원소는 사세삼공(四世三公)의 지체 높은 집안의 출신으로서 관동의 주군과 연합하여 동탁 토벌작전에 나서면서 맹주로 추천되어, 뒤에 공손찬을 격멸하여 기주 청주 유주 명주 등 네 주를 점거하여 당시 최대의 활거세력으로 부상한다.

이쯤 되니 겁 없고 기고만장한 원소는 건안 5년(200)에 70만 대군을 이끌고 하북에서 관도대전을 일으켰으나, 불행하게도 숫자로 보면 1/10도 되지 않는 조조의 7만 군사에게 크게 패하게 된다. 군사의 숫자만으로는 월등히 우세했지만 오합지졸 70만 대군은, 세밀한 작전과 잘 훈련되고 일사 분란한 조조의 7만 군사를 당할 수 없었고, 더구나 원소의 막하장수인 장합과 고람은 원소를 버리고 조조에게 항복하여 오히려 역으로 원소를 치니, 이때 죽은 원소의 군사는 8만 여명에, 피는 내를 이루고 물에 빠져 죽은 시체가 강을 메울 정도였다.

조조는 원소가 버리고 도망친 금은보화와 비단을 거두어 골고루 군사들에게 상으로 나누어주고, 원소가 혼비백산하여 미처 챙기지 못해 버리고 도망친 서책과 작전문서를 뒤지니 편지 한 묶음이 나왔다.

겉봉만 보아도 모두가 허도에 있는 조조 자신진영의 대신들이나 부하장수들이 원소와 내통하여 몰래 주고받은 것들이었다. 이에 막하에 있던 장수들이 편지를 열어보고 내통한 사람들을 색출하여 목을 칠 것을 강력히 건의했으나 조조는 빙긋이 웃으며 “주군이 덕이 없으면 민심이 떠나기 마련이고 사람들의 마음은, 우세한 쪽에 줄을 서는 것은 있을 수 있는 것이다. 그것을 밝혀 무슨 이득이 있겠는가”하며 그대로 모조리 불에 태워 버렸다.

만일 편지를 뜯어 내통한 사람들을 밝혀 처형했다면 수많은 막하를 잃었을 것인데 조조는 통 큰 관용을 베풀어 모두를 구하고 감동케 했으니 조조의 큰 인물됨이 여실히 증명된 셈이다. 한 번 배신한 사람은 두 번 배신한다는 말이 있지만, 죽음의 직전에서 목숨을 건진 이들이야말로 어찌 다시 딴 마음을 먹을 수 있을 것인가?

오늘을 사는 우리는 이 일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조금 전까지도 나에게 창칼을 겨누던 적군을, 또 적군과 내통하던 막하의 부하들의 잘못을 과감히 묻어주고, 나에게 충성을 다하게 하는 통 큰 조조의 배포를 우리는 배워야겠다. 수많은 목숨이 달린, 죽고 죽이는 전쟁터에서 적과 내통한 그 배신자를 용서할 수 있는 영웅다운 면모를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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