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금쪽같은 어른들2
도민칼럼-금쪽같은 어른들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10 17: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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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금쪽같은 어른들2

지리산으로 귀촌한지 20여년, 잠시 전남 구례에 산 적이 있다. 노인 가구 6집만 사는 작은 마을, 뒷집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장례를 도와드린 적이 있다. 할아버지 유품을 정리하는데 포장도 뜯지 않은 상자가 한 가득이었다. 내의에 셔츠에 신발까지, 입고 신어보지 못한 물건들을 보자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어 한숨이 나왔다. 옆에서 보고 계시던 할머니 왈 “안적 죽을 줄을 몰랐제. 아그들이 입으라고 성환디, 명년에 입을라고 애꼈드만” 할머니의 목멘 소리가 아직도 아련하다.

나이가 들면 알아질 것 같지만 우리는 자신이 죽는 날을 모른다. 멋있는 경구를 쓰는 이도, 죽음을 주제로 말하는 이도, 의사도 성직자도, 사람은 태어나면 죽는다는 거대한 명제 이외에 날짜와 시간은 모른다. 암에 걸려서 몇 년을 못 살 것 같은 이도 이겨내는 모습을 보이고 어제까지 혈기왕성하던 이도 간밤에 이별을 고했다는 난데없는 부고를 받는다.

예순을 향해 가면서 어른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종종 한다. 그러나 사실 어른으로의 역할을 가장 잘하는 때는 50대와 60대까지가 아닐까? 몸과 마음이 둘이 아니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듯이 젊은 날에는 몸보다 마음이 이끌면 몸이 좀 힘들어도 금방 회복되니 마음이 시키는 대로 살아도 되었지만 나이가 들면 마음은 마냥 젊은 사람들처럼 행동하고 싶어도 몸이 힘들다고 아우성이면 그 자리를 일어서야 하는 것이다.

사람의 몸속도 이와 같아서 내과의사 친구 말에 의하면 젊을 때는 심장도 간도 튼실하지만 나이가 들면 흔히 간이 쪼그라들고 심장이 오그라든다는 말이 있는데 실제 해부해 보면 그렇단다. 그동안 살아온 ‘폼(가오)’이 있어서 억지를 부리지만 마음속은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그러니 나이 들면 애가 된다는 말은 옳다. 나이 들수록 내 말을 따르라고 할 일도 아니고 나이가 들었으니 어른처럼 하시라고 야단할 일도 아니다.

간혹 슈퍼에이저(SuperAgers)가 있기는 하다. 슈퍼에이저는 평균 수명이 길어진 요즘 시대에 환갑이 훨씬 지났지만 젊은 사람들의 기억력과 맞먹는 젊은 뇌와 근력을 가진 이들을 부르는 말이다. 돌아서면 깜빡깜빡 잊어버리며 헤매는 나 같은 사람에게는 부럽고 존경스러운 대상이다. 슈퍼에이저가 되려면 일단 꼰대여서는 안 된다. ‘요즘 젊은 애들은 말이야’ ‘나 때는 말이야(라떼족)’ 라는 말은 의도적으로라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살아온 지혜는 나눌 필요가 있지만 젊은 친구들을 이해하지 않고 가르치려고만 들면 소통 자체가 안 되기 때문이다. 태어날 때부터 핸드폰을 손에 들고 태어난 Z세대의 사고방식은 4,50대와도 확연히 다르다.

그러니 건강한 페미니즘과 불건강한 페미니즘을 구분하는 것은 어른들이 할 일이 아니다. 젊은 친구들 사이에서 결정하고 자성할 문제다. 어른들은 그동안 살아온 역사를 나누어 주어야 한다. 우리 어머니 아버지가 살아온 어려운 시절을 훈장처럼 내세우기보다 그 시절에 겪은 어려움을 다시 당하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경험을 이야기해야 한다.

금쪽같은 어른으로 살기 위해서는 금쪽같은 행동을 해야 하는데 나이 들면서 그것이 화두다. 그렇다고 위선을 떨 일은 아니다. 사람들은 어리거나 나이가 들거나 오감 말고도 기감이 하나 더 있어서 단박에 알아차린다.

내년 대선으로 뉴스가 시끄럽다. 한 지역의 살림살이도 운영해보지 않고 부모덕에 높은 자리만 누리고 산 이들이 나라살림을 하겠다고 아우성이다. 우리 경험에 의하면 그런 이들은 없는 사람 사정을 머리로만 알기 때문에 국민들을 죄인 다루듯 한다거나 지시만 하고 판결만 할 것이다. 내가 사는 지역의 우세한 당이 지지하니 나도 밀어야지 라는 생각은 금쪽같은 어른이 해야 할 일은 아니다. 금쪽같은 어른은 세상이 거꾸로 가지 않게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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