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전제품의 단명시대
진주성-가전제품의 단명시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10 17:1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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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전제품의 단명시대

계속되는 폭염이 삼복더위의 위력을 과시한다. 남동쪽을 향한 아파트의 13층 가운데 칸으로 앞뒤 베란다가 마주 보며 맞바람이 시원스럽게 직통으로 통하게 틔어있어 에어컨은 붙박이 장식에 불과했고 선풍기도 할 일이 없어 우두커니 자리만 지키고 있었는데 이번 여름은 그게 아니다.

에어컨이 제값을 한다고 냉기를 품어내면 선풍기는 주방과 구석진 곳으로 송풍하는 역할에 신바람이 났다. 좌우로 도리도리는 자동인데 고개를 쳐들거나 숙이는 일은 필요에 따라 손으로 한다. 아뿔싸! 이를 어쩌나? 고개를 숙이려다 무리하게 눌렀던지 그만 목이 부러졌다. 전선 몇 가닥에 매달려 목을 떨어뜨린 채로 열심히 돌아간다. 무안해서 ‘얼마 쓰지도 않았는데 왜 이러지?’ 하고, 속으로 집사람의 타박을 기다리는데 집사람이 의외다 “요즘 전자제품 금방금방 고장이 나요 다시 사요” 했다.

그러고 보니 지난번에 김치냉장고의 냉동실이 이상이 있어 AS 기사를 불렀더니 안쪽을 뜯어보고 하는 말이 냉매 가스가 어딘가에서 아주 미세하게 세고 있어서 찾을 수도 없거니와 7년 넘게 사용하면 이렇게 된다며 새로 사라며 그냥 가버렸다. 10년 가까이 썼으나 겉보기에는 너무 멀쩡하다.

앞서 세탁기 서비스 기사가 한 말이 생각났다. 세탁기가 처음 작동할 때만 ‘끼리리’ 소리를 내서 단추나 동전이 들어가 그런가 하고 서비스 기사를 불렀더니 오래된 제품이라서 분해를 하면 부품이 삭아서 부스러질 우려가 있고 10년 된 제품이라서 부품도 없으니 이대로 쓰라고 했다.

소비자로서는 달리 방법이 없다. 목이 부러진 선풍기를 치우려다 부러진 목 부분을 보니까 플라스틱이 너무 얇아서 부스러졌다. 테이프를 감으면 될 것 같아서 예쁘게 감았다. 잘 돌아가더니 테이프가 헐거워지고 다시 고개를 떨어뜨렸다.

그렇다면 방법이 있다 하고 집 앞에 있는 동생의 공장에서 알루미늄 조각을 가져와 덧대어서 드릴을 사용하여 나사를 박았다. 부목을 덧댄 셈이다. 얼핏 보아서는 상표나 제 살 같이 감쪽같다. 그러나 도리도리는 잘하는데 아래 위 로의 조절은 불능이다. 그래도 표준 높이에 고정되어 잘만 돌아간다. 집사람은 아이디어에 놀랍다며 볼 때마다 웃는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최근의 전자제품이 단명이라는 것이다. 사치스러워야 할 까닭이 없는 나의 문학 교실에는 30년도 넘은 냉장고를 그대로 쓰고 있고 선풍기는 20년이 훨씬 지난 것을 쓰고 있다. 성능이 처음과 같아서 바꿔야 할 이유를 찾지 못해서다. 옛것은 장수하고 신제품은 단명이다. 그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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