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일본 때문이다(1)
도민칼럼-일본 때문이다(1)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11 17:0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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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병선/시조시인·작가
강병선/시조시인·작가-일본 때문이다(1)

지구촌에 코로나 19 범람으로 1년 연기했던 올림픽이 우여곡절 끝에 일본 도쿄에서 열리고 있다. 우리가 올림픽에 참가하느냐? 마느냐? 심각하게 고민 끝에 참가했었다. 그러나 문 대통령이 참석하지 않은 것에는 내 개인의 생각으론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해방 맞은 국민이 목이 터지라고 반탁을 부르짖었지만, 그들은 힘으로 기어이 신탁을 감행했다. 남북분단의 비극은 미국과 소련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많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견해를 필자는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일본에 지배받지 아니했었다면 왜 이런 비극이 일어나겠느냐?”고 나는 묻는다.

삼천리 반도 금수강산이 두 동강 나고 제주 4.3사건이 나고 여순사건에 이어 6.25 한국전쟁이 일어난 것은 일본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전쟁을 치르고 70년 동안이나 통일 조국을 이루지 못하고 남북이 대치하는 비극은 일본이 실마리를 제공했다고 본다.

왜냐하면, 우리가 36년을 식민지 생활을 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나라의 국력은 강해져 있었을 것이고 또한 우리 민족의 기질을 볼 때 이미 선진국 대열에 올라서 있었을 테니 소련이나 미국에 의해 나라가 두 동강 날 일은 만무했으리라 본다.

일본은 오랜 옛날 삼국시대와 고려 때에도 우리나라에 바다를 인접한 고을들을 괴롭히며 노략질을 해왔다. 그러더니 임진왜란을 일으켜 장장 7년 동안이나 전국을 초토화했다. 재산피해는 차 치고라도 천하보다 귀한 인명피해만 해도 조선 인구의 절반 가까이 잃었다는 문헌도 있고 3분의 1을 잃었다는 기록도 있다. 그들은 조선 사람들을 누가 더 많은 숫자를 죽였는가를 경쟁했고 수급을 취해 그 공을 가늠했다.

그들은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씨를 말릴 심산이었다. 수급(首級)을 본국으로 보내다 부패 되며 운반하기가 불편하다면서 코와 귀를 베어 소금 간을 해 그들의 나라로 가져갔었다. 신사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보고 즐겼으며 지금도 그들의 신사 앞에 코와 귀 무덤을 만들어 놓고 있다 하니 천인공노할 짓을 저질렀다.

나라와 나라가 전쟁을 하면 일반 백성과 적군을 죽이기는 하되 장수의 머리 외에는 수급(首級)은 취하지 않았다고 한다. 인간의 탈을 쓰고 상상할 수 없는 만행을 저질러 놓고 사과 한마디 없던 그들에게 결국, 을사늑약을 맺는 수치를 당해야 했다.
국민은 곳곳에서 의병 활동으로 목숨을 초개와 같이 버리고 또 빼앗겼다. 임진왜란과 1910년에 나라를 송두리째 빼앗겨 버리고 36년 동안이나 식민지 생활하는 동안에 수백만 명이 목숨을 잃어야 했다.

오랜 옛날 임진왜란 때부터 그들은 철저하게 우리 민족을 말살하려는 정책을 펼쳤다. 일제강점기 때는 대대로 이어져 온 미풍양속을 짓밟고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했으며 심지어 일본식 성과 이름을 사용케 했다. 저네들이 일으킨 전쟁에 학도병으로 끌려가고 징병 징용으로 위안부로 끌려가 죽어야 했으며 나라를 되돌려 달라고 외치다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 만주로 중국, 러시아로 해외를 돌며 독립운동을 하다가 죽어간 국민의 숫자는 헤아릴 수도 없다.

호랑이가 제일 무서워하는 것은 곶감이라는 말은 우리나라 전래동화에 등장하는 이야기다. 이처럼 내가 어렸을 때 제일 무서워했던 것은 이비(耳鼻)였으니 곧, 이비순사(耳鼻巡査) 온다는 말이었다. 이 말은 곧 20세기 어린 시절을 살았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순사 온다는 말이나 이비순사 온다는 말을 들었을 것으로 안다. 일본 경찰이 귀와 코를 베러 오니 우는 아기에게 울음을 그치라는 말이다.

그들은 우리나라에서 생산된 자원들을 수탈해가고 심지어 농사지은 쌀과 보리까지도 빼앗아갔으니 초근목피로 목숨을 연명했다. 보릿고개란 말이 일본강점기에 생겨난 말이 아니던가.

우리 민족이 그들에게 수난을 당하고 살았던 과거를 세월이 간다고 잊을 순 없다. 아직도 위안부로 욕보셨던 할머니들이 살아계시고 징용으로 징병으로 끌려가셨던 분들이 살아계신다.

그때 끌려가셨던 분들이 태반이 돌아오지 못하였거나 생존해 계시는 분들의 상처는 깊다. 우리의 아버지·어머니들이 그때 입은 상처가 아물지 않고 통증으로 고통스러운데 기억에서 지울 수가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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