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추억의 별미
진주성-추억의 별미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19 17: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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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추억의 별미

지금이야 큰 마트에 가면 없는 것이 없는 좋은 세상이지만, 필자들이 자라던 어린 시절은 참 어렵고 모든 것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그 어렵던 시절도 지금 와서 생각하니, 때로는 그립고 참 좋은 시절이었다고 생각 된다.

어린 시절 저녁때가 되면 마당가에 제릅(삼대)방석을 깔고 옆에는 모깃불을 피운다. 모깃불은 마르지 않은 풀이나 생솔가지 등을 꺾어 피우면 불길은 없고 연기만 자욱하니 모기가 가까이 오지 않는다. 모기향도 없고 선풍기도 없던 시절, 제릅방석은 딱딱하지만 밑으로 공기가 통하니 오늘날 돌침대보다 시원했고 부채 하나면 거뜬히 더위를 극복하였다.

6.25전쟁 후 그 어렵던 시절 미국에서는 구호물자로 여러 생필품과 함께 우유가루 등을 원조해왔는데, 학교에서는 드럼통에 담긴 우유가루를 우리들에게 한 되, 또는 두되씩 나누어 주기도 했다. 우리들은 그것을 보따리에 받아 집으로 오던 중 그동안을 못 참고, 맨 가루를 퍼 먹고 온 얼굴에 하얗게 분칠을 하고 서로 보며 웃곤 하였다.

저녁 식사 때 여름한철은 호박잎에 된장이면 일류요리였다. 어머니는 밥을 할 때 물은 넉넉히 붓고, 별도로 사발에 된장을 조금 담아 솥 안에 넣어두면 끓어오른 물이 된장그릇에 담겨 바로 짭짤한 된장조림이 된다. 그리고 밥물이 잦아들 무렵에 호박잎을 넣으면 한꺼번에 밥도 되고 된장도 찌지고 호박잎도 삶는 지혜를 발휘하셨다. 때로는 감자나 고구마도 넣으면 함께 삶기니, 오늘날처럼 가스레인지나 전자레인지가 없어도 모든 요리를 거뜬히 해결하였다.

밥은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쌀이 귀하여 보리쌀을 삶아 대바구니에 담아 부엌에 걸어 두었는데, 이것을 일러‘보리쌀 바구리’라 하였다. 식사 때가 되면 보리쌀 바구리에서 가족의 수 큼 퍼내어 또 삶으면 구수한 보리밥이 되는데 이 맛좋은 보리밥을 두 번 삶은 밥이라 하여 곱쌀미라 하였다.

이 곱쌀미 보리밥에 호박잎을 된장에 찍어먹으면 아마 먹어보지 않은 사람을 그 맛을 모를 것이다. 오늘날에도 보리밥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 있어 가끔 옛날의 그 맛을 잊지 못하는 분들의 입맛을 충족시켜 주기도 한다.

또 가끔 엄마는 밀가루를 반죽하여 호박잎에 깔고 거기에 팥이나 본두콩을 박아 밥이 되어갈 무렵 솥 안에 넣어두면 멋진 빵이 되기도 했다. 어머니의 정성으로 만든 꽁보리밥에 된장과 호박잎을 먹고 자란 우리들은 70이 중반이 넘도록 건강히 잘 지내고 있으니 역시 신토불이 우리 것은 좋은 것인가 보다.

일전 시골의 친구가 오이와 호박잎을 보내와 호박잎을 삶아 된장과 함께 먹으며 감사한 마음과 함께 흠뻑 추억에 젖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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