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아침을 열며-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22 16: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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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대학원장·철학자-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철학의 시조 탈레스가 남긴 많지 않은 말 중에“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라는 것이 있다. 일반에게 그다지 널리 알려진 말은 아니다. 그러나 철학 전공자들 사이에는 제법 알려진 명언 중의 하나다.

그런데 이 말은 보통 이른바‘범신론’적 명제로 기독교적 일신론과 대치점에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한다. 그래서 극단적인 어떤 기독교도들은 이런 견해의 소지자를‘사탄’으로 단정하고 매도하기도 한다. 그런데 정말 그런 걸까? 이 말은 반기독교적인 것일까? 신성모독일까? 아니다.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이른바 범신론/다신론은 이른바 일신론과 모순-대립적인 것이 아니다. 신학적-철학적 해석에 따라 언뜻 반대처럼 보이는 이 두 견해는 얼마든지 조화롭게 양립할 수가 있다. 아니 같은 것이 될 수도 있다. 황당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하 탈레스를 위한 철학적 변론을 한 자락 펼쳐본다.

“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라고 말한 탈레스는 아마도 기독교라는 저 유대인의 종교를 몰랐을 것이다. 예수보다 약 600년 전의 인물이었으니까. 그리고 널리 알려진 대로 그의 시대는 아직‘로고스’ 이전의 ‘뮈토스’시대이기도 했다. 신화적인 시각으로 세계를 바라보던 시대, 호메로스와 헤시오도스의 언어로 세계를 읽던 시대였다.

그들에게 태양은 제우스였고 대지는 가이아였고 우주는 우라노스였고 바다는 포세이돈이었고 아름다움은 아프로디테였고 사랑은 에로스였고 지혜는 아테나였고 그렇게 자연의 일체가 각각 모두 다 신들이었다. 후대의 포이어바흐가 해석했듯 그 신들의 모습은 명백히 인간 자신의 모습이 투영된 것이었다. 다만 인간이‘죽을 자’‘유한한 자’인 데 비해 신들은‘죽지 않는 자’‘무한능력자’라는 결정적 차이가 있었다. 그건 아마도 인간이 스스로의 한계를 인식하여 그 한계를 넘어선 존재를 상정한 결과일 것이다. 그 상정에는 어떤 기대의 의탁도 있었을 것이다.

인간의 한계를 넘어선 것, 그런 의미에서의‘신적인 것’은, 특히 유한한 인간의 입장에서 볼 때, 그야말로 만유에 걸쳐 있다. 그 일체 존재가 다 인간의 능력 바깥에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배경에서 탈레스의 저 말이 의미를 갖게 된다. 만물은 어느 것 하나 예외 없이 (인간 자신까지도 포함해서), 다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는,‘신적인 것’이다. 우주도 태양도 달도 대지도 바다도… 만유가 모두 다 인간의 능력‘저편에’있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다소 문학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저 탈레스의 말인 것이다.“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그렇다면 이 말이 어떻게 저 기독교의 일신론과 연결될 수 있는가. 간단하다. 기독교적 세계관에 따르면 일체 존재는 다 유일 절대적인 그리고 전능한 신이 만드신 것, 즉‘창조’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저 구약성서의 창세기를 통해 우리에게 익숙한 서사다. 그 창조의 결과로서 존재하게 된 만유가 바로 탈레스가 말한 저‘만물’과 다른 게 아닌 것이다. 같은 것이다. 그러니 탈레스의 저 말은 실은‘만유는 신의 피조물이다’라는 저 기독교적 근본명제와 내용적으로 서로 통하는 것이다. 결과인 만유 속에 원인인 신의 의지가 담겨 있다는 말이다. 만유에 신의 숨결이, 혹은 손길이 닿아 있다는 말이다. 정말 그럴까? 그렇다. 어는 것 하나 신의 것 아닌 것이 없다.

물론 신의 존재나 그 신에 의한 만유의 창조라는 것은 이성적으로 확인 불가능한 것이고, 종교적 신앙으로 받아들여야만, 그리고 그 범위 내에서만, 비로소 유효한 것일 수 있다. 그러나 그걸 꼭 기독교적‘여호와’신으로 부르지 않더라도, 세계와 만유를 이와 같이 있게 한 그런 엄청난 능력을 우리 인간은 특정 종교-신앙과 무관하게 인정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런 걸 인정하지 않고서는 현실적으로 우리 눈앞에 펼쳐진 이 일체존재를, 자연법칙을, 세계현상을, 설명할 도리가 없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일체존재가 어마어마한 현상이기 때문이다.

흔해빠진 민들레 한 송이에서 이 거대한 우주공간의 존재에 이르기까지 만유는 어느 것 하나 놀라운 신비 아닌 것이 없다. 인간의 존재는 더더욱 그렇다.‘신’의 존재와 의지와 능력을 전제하지 않고서는 그 어떤 첨단과학으로도 이 자연현상이 설명되지 않는다. 수학과 과학이 동원될수록 더욱 그렇다.

이런 근본사실을 겸허하고 솔직하게 사유한다면, 그 누구도 탈레스의 저 말에 토를 달수가 없다.“만물은 신들로 가득 차 있다” 잘 살펴보라. 아침햇살에 방긋 웃는 저 나팔꽃 속에도, 그 꽃을 찾아가는 저 나비의 날갯짓에도, 저 밥 한 톨에도, 저 물방울에도, … 저 일월성신의 움직임에도 저 무한공간의 침묵 속에도, 신들이 즉 신의 숨결이 가득 차 있다.

그 존재를 느끼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다면 그건 오만하거나 머리가 나쁘거나 고집에 사로잡혀 있거나 하기 때문이다. 말의 표현보다도 그 표현에 담긴 의미를 읽지 않으면 안 된다.“신이 곧 자연(deus sive natura)”이라고 했던, 그래서 파문까지 당했던, 저 스피노자의 말도 실은 같은 것이었다.

이 말은 신의 격하가 절대 아니다. 무지한 고집이 곧잘 문제를 일으킨다. 알아두자. 범신론은 절대 신에 대한 불경이 아니다. 신성모독이란 터무니없다. 오히려 그 반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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