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세 치 혀를 주의하라
칼럼-세 치 혀를 주의하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23 17:36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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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칠암캠퍼스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세 치 혀를 주의하라

첫째 말이 너무 많은 것. 둘째 이야기가 너무 긴 것. 셋째 자기 자랑을 늘어놓는 것. 넷째 제 집안이나 출신을 자랑하는 것. 다섯째 남의 말 도중에 끼어드는 것. 여섯째 쉽게 약속을 하는 것. 일곱째 가난한 이에 선물하고, 그걸 남들에게 자랑삼아 떠드는 것. 여덟째 잘 알지도 못하면서 남을 가르치는 것. 아홉째 슬픈 사람 곁에서 웃고 노래하는 것. 열 번째 친구가 숨기고픈 일을 폭로하는 것. 열한 번째 자기보다 아랫사람을 막 대하는 것. 열두 번째 말을 쉽게 내뱉는 것. 막말 개소리의 시대에 유념해야 할 가르침이다.

일본 도쿠가와 시대(德川時代:1603~1867)후기 료칸(良寬:1758~1831·46세)선사의 가르침이다. 촌장의 장남으로 태어나 17세에 출가하여 다이구료칸(大愚)이라는 법명을 얻어 승려가 되었다. 21세 때 순회 승려인 고쿠센(國仙)을 따라 비추구니(備中國)의 다마시마(玉島)에 있는 엔쓰사(圓通寺)라는 사찰로 갔다. 거기서 12년 동안 엄격한 수도생활을 했으며 고쿠센이 죽은 뒤에는 탁발승으로 일본 전역을 돌아다녔다. 노년에 고향인 에치고 구니로 돌아와 만요슈(萬葉集)와 고대 서예를 연구했다.

철저한 청빈주의, 고행주의로 일생을 살았지만 한편으로는 자유분방하고 시와 그림에 능통한 활달한 면도 지니고 있었다. 료칸 선사가 산기슭에 조그마한 오두막을 짓고 살 때였다. 어느 날 밤도둑이 들었으나 가난한 선사에게서 훔쳐갈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실망한 도둑을 붙잡고 료칸 선사는 말했다.“그대는 우리 집까지 먼 길을 왔는데 빈손으로 가서야 되겠는가? 이 옷을 벗어 줄 터이니 가져가시게”도둑은 선사가 벗어 주는 옷을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었다. 벌거숭이가 된 료칸 선사는 뜨락에 앉아 달을 바라보며 중얼 거렷다.“저 아름다운 달까지 줄 수 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지만 달은 줄 수도 훔칠 수도 없구나”

료칸 선사에게는 조카가 있었다. 그는 친척들의 권고도 무시한 채 고급 창녀에게 미쳐 재산을 탕진하고 있었다. 원래 료칸 선사는 세속에서 가문을 통솔하고 재산을 관리했어야 할 입장이었다. 그래서 친척들은 료칸을 찾아가 조카의 방탕한 생활에 대한 조카의 버릇을 고쳐 놓으라고 강권하였다.

료칸 선사는 이 말을 듣고 조카를 만나러 먼 길을 떠났다. 조카 역시 료칸 선사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기뻤다. 선사는 조카와 함께 옛이야기를 하다가 좌선으로 밤을 지새고 아침을 맞았다. 료칸 선사는 조카에게 떠나야겠다는 작별 인사를 하며 이렇게 말했다.“세월은 어쩔 수 없구나. 옛날엔 안 그랬는데 이제 나이가 들어 그런지 손도 떨리고 아무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구나. 얘야. 나를 좀 도와서 내 짚신의 끈을 매주렴”조카는 료칸 선사를 도왔다. 이때 료칸 선사가 다시 말했다.“고맙다. 나를 보면 알겠지만 인생이란 하루가 다르게 늙고 약해진다. 너도 나와 같이 되기 전에 할 일이 있으면 어서 하도록 해라”료칸 선사는 단지 이 말 외에는 어떤 충고나 설교도 하지 않았다. 료칸 선사가 떠난 그날부터 조카에겐 변화가 왔다. 자신의 삶을 참회하며 지금까지의 방탕한 생활을 말끔히 청산했다.

한번은 그 지방의 번주(藩主)가 료칸 선사를 초청하기 위해 심부름하는 사람을 보냈다. 마침 료칸 선사는 탁발을 하러 나가고 없었다. 심부름꾼은 선사를 기다리는 동안 암자 주위의 무성한 잡초를 뽑고 깨끗하게 청소를 했다. 이윽고 돌아온 료칸 선사는 주위를 돌아보면서 탄식했다.“풀을 다 뽑아 버렸으니 이제는 풀벌레 소리도 듣지 못하겠군”심부름꾼이 돌아가 료칸 선사의 궁핍한 생활을 전하자 번주는 다시 심부름꾼에게 선사를 돕겠다는 뜻을 전하게 했다. 이에 선사는 다음과 같이 답하며 사양했다.“땔 정도의 낙엽은 바람이 가져다주네”

제자 한 사람이 그에게 간청하기를, 자신의 남동생이 마을 사람들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산적인데, 스승께서 자기 동생에게 가서 그의 행동을 바로잡아달라고 했다. 료칸은 그 산적의 소굴로 가서 함께 밤을 보냈다. 두 사람은 단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 아침이 되자 산적은 허리를 굽혀 료칸이 신발 끈 매는 일을 도와주었다. 그때 산적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려 스승의 발을 적셨다. 산적이 흐느끼면서 말했다.“저는 한 번도 지혜로운 사람과 함께 있어본 적이 없습니다. 제가 아는 사람은 저를 붙잡아 벌을 주려고 하는 포졸들뿐이었습니다. 료칸께서 저와 함께 하룻밤을 지내주신 것은 제가 여전히 가치 있는 사람임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날 이후로 그 사람은 다시는 죄를 짓지 않았다. 료칸 선사는 말을 할 때 하고 말을 하지 않을 때 하지 않아 사람을 구제하고 감동을 주었다. 요즘 선거를 앞두고 정치권에서는 함량 미달의 막말꾼들이 난무하고 있어 되새겨 보았다. 왜 그리들 천박한지… 에이 퉤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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