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당신은 누구입니까
시와 함께하는 세상-당신은 누구입니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8.25 17:30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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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당신은 누구입니까

당신은 누구입니까
나는 해뜨기 전입니다 당신은 밤입니까
나는 해 떨어진 직후입니다 당신은 여명입니까
땅거미입니까 나는 오후 7시입니다 오전 7시의 그림자입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외발로 선 회색왜가리입니까
나는 정좌한 자정입니다 자정과 정오의 자세는 동일합니까
나는 정면뿐인 바위입니다 당신의 정면은 무엇을 기준으로 정면입니까
나는 있다와 보이지 않는 모든 있다 만큼 많은 있다가 기준입니다

(박영기의 ‘기준’)

박영기 시인은 우리나라 현대 포스트모더니즘(post modernism)의 선두주자라 할 수 있는 김어희 선생으로부터 사사(師事)한 시인으로 그의 시적 표현 방법은 당연히 김언희 시인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시를 읽어 보면 굉장히 어려운 느낌이 강하게 든다. 그러니까 이번 시도 당연히 꼼꼼히 읽고 생각을 많이 해봐야 할 것 같다.

우선, 시에 나타난 당신의 정체를 밝혀야 할 것 같다. 시인이 묻는 당신의 정체는 누구일까, 이것은 당신이 아닌 나라고 해도 될 것이다. 시에서 말하는 당신은 시간적 공간적 배경에서 어떤 사물을 보고 판단하는 눈높이(기준) 말하는 것 같다. 해뜨기 전, 밤, 해 떨어진 직후, 여명, 땅거미 등의 언어는 시간의 기준이 어디인가를 정리하는 것으로 태양이 뜨거나 지는 것이 기준이 되기 때문에 여기서 말하는 시간의 기준은 태양이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당신은 태양이다. 그것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점심 먹을 때가 되었다는 일상어는 점심 즉 밥 먹는 일을 당신(중천에 뜬 태양)으로 삼아야 하는 것과 같다.

시의 중간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당신의 정체를 밝히고 있다. 회색 왜가리라는 표현이 좋다. 주지하시다시피, 왜가리는 물가에서 오랫동안 한쪽 발을 들고 먹잇감이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다. 한쪽 발을 들어 올림으로써 짧으며, 서 있는 다리에 비해서 조금 비뚤어져 있다. 이건 무슨 자세인가, 바로 시계의 6시 30분 방향으로 된 모양이다. 그러니까 뒤이어 나오는 정좌한 자정은 0시 0분이 되는 것으로 6시 30분의 반대 방향에 있다. 그것은 정오의 시간대와 같은 방향으로 여기서 말하는 당신이란 당연히 시계의 시간을 기준(당신)으로 삼고 있다는 말이다.

앞의 당신이 시간적인 기준에 대해서 말했다고 한다면 세 번째 연은 공간적인 장소를 당신(기준)으로 삼고 있다. 정면의 바위라는 것, 시인이 말하는 당신의 정면이란 어느 방향인가 하는 것이다. 즉, 정면의 기준이 뭐냐 하는 것이다. 물론 판단하는 사람의 얼굴 부분이 기준이 될 테지만, 다른 요소도 있을 것이다. 예컨대 건물의 중앙 현관이 있는 쪽이라든지 등등…, 그리고 있다 와 없다(보이지 않는다)의 당신(기준)은 무엇일까. 당연히 구체적이냐 추상적이냐의 기준일 것이다.

시인이 말하는 기준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겠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판단의 기준은 무한대일 것이다. 예컨대 옳다 그르다, 밝다 어둡다, 등등 그 추상적인 기준을 시제로 삼은 것은 정말 추상적인 제목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시를 쓴다는 발상 자체가 앞서 나가는 것이라 하겠다. 이처럼 해체 형식의 시는 평범한 생각이나 시각에서 구사되는 것이 아니다. 당연히 오랫동안 사물을 관찰하고, 깊은 생각을 하고 나서 탄생하는 시이기 때문에 당연히 독자들도 오랫동안 읽고 음미를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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