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추석(秋夕)에 관한 문헌기록
진주성-추석(秋夕)에 관한 문헌기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9.08 17:4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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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추석(秋夕)에 관한 문헌기록

추석(秋夕)은 ‘삼국사기’에 보면 신라 3대왕 유리이사금 때 한 달 전부터 베 짜는 여자들이 궁궐에 모여 베를 짠 양을 가리고 승부를 가린 다음 진 편이 이긴 편에게 음식을 만들어 제공하고 춤추고 노래하였고 희소곡이란 노래를 부르며 길삼놀이를 즐겼다 하여 우리나라 3대 명절로 호칭되는 전통을 가지게 되었다.

가을 저녁에 풍작의 기쁨을 누리며 놀이를 즐겼고 조상의 공적을 기리고 산소를 찾아 성묘를 하고 조상의 은택을 기리게 된다.

‘동국세시기’에는 송편. 시루 떡, 인절미, 밤단자를 추석의 음식으로 소개했다. 이스라엘은 족장시대에 동서남북으로 흩어져 결국 애급에서 4백여 년간 종살이를 하다 현재 이스라엘 지역으로 안착하게 되자 장막절(초막절)을 맞아 그동안 지키고 인도해 주신 하느님을 찬양, 찬송하며 제단을 만들어 동물을 잡아 제물을 바치며 일주일 동안 춤추며 즐겼는데 우리나라와 추석 날자가 동일하여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

‘조선왕조실록’에 추석에 관한 기록이 231회 나오는데 태종 2년 8월 13일 상왕이 제릉에 추석제를 지냈다라고 했다. 태종 7년에 세자로 하여금 인소전에 추석제를 행하게 했다라고 했다. 태종 9년에 문소전(文昭殿)에 추석제를 행하였다. 세종대왕 즉위년에 영의정, 호조판서, 예조판서와 함께 건원릉에 나가서 추석제를 행하였다. 세종 6년 광회전에서 풍악(風樂)으로 추석제를 행하여 꼭 슬픈 날이 아님을 보여주었다. 추석에 대하여 태종, 세종, 중종, 영조 때 가장 많이 언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승정원일기’에는 추석이란 말이 1,302회 기록되었는데 영조대왕 때 467회 기록되었고 정조 대왕 때 171회 순조 때 192회 기록되었다.

한가위, 한가베, 가베 등의 단어는 거의 기록이 없어 한가위라는 말은 광복 이후에 생긴 것임을 알 수 있다. 추석제라는 기록도 503회 나오고 영, 정 시대에 집중적으로 언급되었다.

교황 비오 12세는 1939년에 제사의식은 그 나라 민속일 뿐 교리와 상관없다고 훈령을 내리니 조상에 관한 효성과 존경을 표현하는 민족의식으로 여기게 되었다.

불교는 국과 3색 나물, 3색 과일을 놓고 부처님과 영을 모시고 축문을 올리고 음복한 다음 조상을 기린다 라고 했다.

역대 대통령들은 격려금, 동태, 스카프, 넥타이, 고사리, 취나물, 곶감, 전통 술 등을 선물했으나 문대통령은 의료진에 청명주와 쌀을 선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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