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정성
진주성-정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9.16 17:26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정성

필자의 어린 시절 선고(아버지)께서는 4대 봉제사를 모셨다. 종손도 아니었고 큰집 종형이 있었음에도 큰집 형편이 어려워 작은집이면서도 기꺼이 고조 증조 조부모 부모 제사와 설 추석 명절 차례까지 1년에 열 번의 제사를 모셨다.

거의 매 달 제사를 모셨는데 어머니는 제사가 다가오면 콩나물을 손수 동이에 기르고 생도라지 까서 물에 담가 우려내고 제사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쪼르르 콩나물에 물주는 소리가 나면 필자는 ‘아- 제사가 다가오는 구나’ 하고 알았다. 지금처럼 수도도 가스레인지도 없던 시절 어머니는 제삿날이면 흰 무명 치마저고리 깨끗이 빨아 입고 먼우물까지 가서 물동이에 깨끗한 물이고와서 부엌에서 불을 때어 멧밥을 짓고 제수 하나 하나 정성을 쏟았다.

큰집 종부도 아니면서 그 많은 제사를 반복해 모시면서도 단 한 번도 불평을 하거나 고되다고 짜증스런 표정을 짓는 모습을 본 적이 없었다. 그렇게 조상에 정성을 다 했는데도 어머니는 딸만 여섯을 낳으셨다. 칠거지악이 아니더라도 남의 집에 출가하여 아들을 못 낳으면, 모든 책임을 여자에게 돌리던 시절이었으니, 어머니는 아들 못 낳은 죄로 평생 기를 못 펴고 살았다. ‘콩 심은데 콩 나고 팥 심은데 팥 나는데’ 어째서 아들 못 낳는 것이 여자의 책임인가.

그러나 조상을 섬기는 정성이 지극했던 어머니의 공덕은 드디어 나타나기 시작했다. 딸 여섯을 낳고 6년 동안 태기가 없자 “내 사주팔자에는 아들이 없는갑다. 이제는 끝났다” 하고 포기하고 있었는데, 기적처럼 뒤늦게 필자가 태어났다.

필자는 강력히 믿는다. 필자가 향교전교도 하고 성균관 부관장에 고문도 하고 뒤늦게 진주노인대학 학장을 하며 이 나이에도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단연 어머니의 정성과 공덕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은 아내가 어머니의 뒤를 이어 제사를 모시고 있지만 조상을 섬겨 손해 보는 일은 없는 것이다.

얼마 전 어떤 모임의 식사자리에서 교장을 지내신 80이 훨씬 넘은 분이 이런 말씀을 하셨다. “우리는 몇 해 전에 모든 산소를 한곳에 모았는데 어제 일요일에 벌초를 했다. 벌초 후 간단한 제물을 차려놓고, 앞으로 기제사는 물론 설 추석 차례를 모두 합쳐 1년에 한 번 벌초 후 하기로 했다. 알고 보니 우리만 그러는 것이 아니고 더러 그리 한다 쿠더라” 하고 합리적인 방법임을 강조하였다. 그리 하더라도 80이 넘은 교육자 출신 지도자라면 부끄러워 조금 숨겼으면 좋으련만 “남들이 나를 선구자라고 한다” 라고 의기양양했다.

세상에 참 별놈의 선구자도 다 있다 싶었고 아무리 세상이 변하고 윤리도덕이 실추되었다고 하지만, 내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조상님의 음덕이거늘 어찌 이리도 무례할 수 있을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