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그리워서 피는 꽃
진주성-그리워서 피는 꽃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09.28 17:18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ㆍ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그리워서 피는 꽃

다문다문 오가는 사람들이 어찌나 반가운지 해맑은 미소로 방싯거리는 코스모스는 길마중을 나와 길섶에서 한들거리고, 해마다 이맘때가 되면 외진 길 산모롱이의 언덕배기에 들국화가 피어나서 행여나 그리워하던 사람이 오려나하고 기약 없이 기다린다.

언제나 그렇듯이 기다리는 사람은 왜 그리 더디 오는지. 눈 가는 곳마다 아른거리는 그리움에 기다리다 길어진 목이 가늘어져 가슴 저리게 애처롭다. 그 누구와도 만나자는 언약도 없었고 기다리라는 당부도 없었지만, 그냥 그리워서 마냥 기다린다.

처음 만나면 누구나 초면이고 거듭 만나면 누구나 인연이 아닌가. 보내고 서러워지지 않으려고 만남이 좋아서 긴긴 시간을 하염없이 기다린다. 더러는 먹장구름 속에서 하늘을 쪼갤 듯이 으르렁거리는 천둥소리에 졸인 가슴은 야위었고, 한낮을 달달 볶겠다며 아침부터 으름장을 놓는 태양의 위세 앞에 몸을 도사렸고, 천지를 뒤집을 뜻한 광란의 폭풍우 속에서는 숨을 죽이고 가슴으로만 할딱거렸다.

덜 가진 자의 운명일까, 약한 자의 숙명일까. 부귀도 영화도 누릴 욕심은 애당초에 없었고 애지중지 보살핌을 받는 오곡백과를 시샘하지도 않았다. 용케도 탈 없이 살아온 것을 감사하며 오만하게 길목을 막아서지도 않았고 언제나 길섶으로 한 발짝 물러섰으며, 가을바람에 간간이 소식이나 전하는 들국화도 언제나 외진 길 산자락에 비켜서서, 고달픈 사람이면 애달픔을 나누고, 서러운 사람이면 눈물겹게 반기면서 설움도 녹이고 시름도 삭인다.

내 것도 끝내는 내 것이 아닌 것을, 돌에 새긴다고 남을 것인가, 몰래 감춘다고 남을 것인가. 오가는 사람들의 가슴속에 남고 싶어 가을 길에 피어났다. 오면 어떻고 가면 어떠하랴. 붙잡는다고 머물 것이며 밀쳐낸다고 떠날 것인가. 내가 선 자리가 전부이고 내가 가진 것이 지금의 전부인데 아낌도 남김도 없으니 정 주고 보내면서 보내고 그리워서 마냥 기다린다.

오고 감이야 나의 뜻이 아닌데 간절한들 어쩌고 집착한들 무슨 소용이 있으랴. 만남의 반가움도 보내는 아름다움도 가슴이 아리는데 그래도 보내면 서운하여 두고두고 그리움이 되어 가슴을 저민다.

기다림의 시간은 더디 가지만 그저 다문다문 오가는 사람이 있어 인적이나 간간이 이어졌으면 하고 산들바람 가을 햇살 한가득 받으면서 밤이슬이 차가워도 달을 보며 별을 세며 그리워서 밤을 샌다.

오가는 사람이야 와도 그만 가도 그만 서로를 비켜 가지만 길섶에서 기다리는 코스모스와 외진 길에 피어있는 들국화는 그리움만 쌓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