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와 함께하는 세상-너는 기계일 뿐이야
시와 함께하는 세상-너는 기계일 뿐이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0.06 17:1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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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창하/시인
이창하/시인-너는 기계일 뿐이야

“오늘 아침 샐러드에는 오렌지를 넣을 거예요
당신 빵을 좀 구워주실래요?”
알렉사는 앞치마를 두르고 LA갈비를 굽는다

“어젯밤에 골든 키위를 사 와 갈비에 넣었더니
제맛이 나네요”

알렉사의 주인은 여전히 독서 중이다
타인의 감정을 읽는 뇌가 정지된 기계처럼 그는 행동한다
그는 그 사실을 모른다
드디어 식탁에 앉은 그는

사춘기 아들에게 우주 정거장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저 샐러드는 프렌치 레스토랑에서 18,000원 하더군요
갓 만들었으니 한번 들어 보세요”

“알렉사 말을 끊지 마, 너는 기계일 뿐이야”

감정이 상한 그녀는
잠시, 말을 잃어버린 인형이 된다
얼굴이 굳어진 채로
자기만의 골방에 들어가 휴대폰 메모에 일기를 쓴다

디지털 인형들이 소곤거리는 소리가
벌들이 윙윙거리듯 방안을 떠돌고
외로운 알렉사는
사냥한 미소를 복구하는 매뉴얼을 업데이트한다

(김혜영의 ‘아침 식탁을 차리는 알렉사’)

일종의 연극 대본 같은 이야기로 전개되는 듯하다. 하지만, 이 시 속에는 점차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아내로서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다만, 감정을 잃어버린 채 집에서 밥하고 빨래하는 가사도우미 수준으로 추락한 중년 여성의 심정을 감정을 대변하고 있다.

알렉사(Alexa)는 아마존에서 개발한 인공지능 플랫폼이란다. 말하자면 일종의 인공지능 로봇이라고나 할까. 상황을 추리해 보면 가사도우미용 로봇을 부리고 있는 배경으로 보면 시간적으로 미래 세계인 듯 한 상황설정을 하고 있다.

가사도우미는 아침 일찍 일어나 식사를 마련하고는 주인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지만, 그 주인은 전혀 반응이 없다. 오로지 독서에 빠진 채 알렉사의 말을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다 식사가 시작되자 그 주인은 아들과 함께 별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다 나눈다. 그사이 틈을 노려 알렉사가 대화에 기어들려 하지만, /알렉사 말을 끊지 마, 너는 기계일 뿐이야/라며 나무란다. 대화를 거부하는 것까지도 모자라 대화 대상자로도 인정하지 않는다.

독자 여러분께서는 우선 여기까지 읽고 잠시 생각해 보자. 아무리 로봇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 나에게 일용의 양식을 제공한 상대에 대한 예의가 제대로 갖추어지고 있는지. 그리고 다음 부분을 읽으면서 로봇 알렉사를 잊어버리고 알렉사를 가정주부로서 아이의 엄마이자 한 남자의 아내로 생각해 보자. 사회생활을 하는 남편이나 또래들과 어울리는 자식들은 엄마와 채널이 맞지 않다면서 대화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그 엄마나 아내 감정이 상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인형처럼 표정을 바꾸고 폭발 직전의 마음을 안정시키려 혼자서 휴대폰을 만지작거리기만 한다. 그리고 잠시 마음을 추스르고 가족들을 향하여 다시 사냥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로 마무리를 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알렉사가 “중년의 우울증”을 앓지 않는다면 정상일까. 중년 남성들이여 지금 당장 당신의 가족과 가정을 돌아보라. 세상 모든 이치가 원인 없는 결과가 없고, 결과가 마련되면 근원적인 원인이 없는 예는 없다. 이런 식으로 살다가 10년 후면 상황이 역전되어 반드시 알렉사의 차가운 복수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평소 페미니스트로 자칭하는 시인은 알렉사라는 로봇을 통해 오늘날의 중년 가정주부를 그리고 있다. 미리 고백하는데 필자는 이미 오래전부터 수시로 밥하고 빨래하고 설거지하는 것은 물론, 집 안 구석구석 청소하기를 주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고백한다. 모두 늙어서도 따뜻한 밥 먹고 싶으면 하루빨리 정신을 바짝 차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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