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람들 이야기-장면2
아침을 열며-사람들 이야기-장면2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0.19 17:28
  • 14면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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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사람들 이야기-장면2

많지는 않을지 모른다. 그러나 인생이라는 것을 되돌아보면 ‘고마운 사람’이라는 존재가 누구에게나 몇 명은 있는 법이다. 내게도 그런 존재가 여럿 있다. 그 중 한 분의 얼굴이 떠오른다.

대학 철학과에 갓 입학했을 때, 가장 낯설었던 과목의 하나가 논리학이었는데, C라는 교수님이 가르치셨다. 수학과 좀 악연이 있었던 나였지만 그 교수님 덕분에 나는 논리학을 아주 재미있게 공부할 수 있었다. 개념론, 판단론, 추리론, 오류론. 지금도 아주 빠삭하게 꿰고 있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고마운 일이지만, 이분이 내게 베풀어준 은혜는 하나둘이 아니다.

전남 출신이신 그 교수님은 복도에서 담배를 피우던 한 학생에게 불같이 화를 내시며 호통을 치기도 했던 소문난 호랑이 선생님이었음에도 어쩐 영문인지 경북 출신인 나를 편견 없이 특별히 예뻐해 주셨다. 2학년 올라갈 때 좋아하던 국문과로 전과할 기회도 있었지만 나는 이분의 사랑을 배신할 수가 없어 철학과에 잔류를 결정하기도 했었다.

그 특별한 ‘아낌’은 4년 내내 계속되었고 덕분에 큰 외부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4학년 때는 일찌감치 졸업 후 ‘조교’를 하도록 내정도 해주셨다. 조교 생활 1년 후 나는 일본 정부 장학생으로 선발되었는데, 이분이 직접 나서서 국제전화도 걸고 편지도 쓰고 해서 저쪽 지도 교수까지 연결해주셨다. 그 덕분에 나는 좋은 지도교수 밑에서 의미 있는 유학생활을 보낼 수가 있었다.

소설보다 더 소설 같은 스토리는 통째로 생략하지만 5.18을 전후해 이분은 해직 교수가 되었고 끝내 복귀를 못한 채 병을 얻어 세상을 뜨고 말았다. 그래서 더욱, 그 분은 내 가슴 속에서 절대로 지울 수 없는 인생의 한 토막으로 남아있다.

교수님은 열암 박종홍 선생과 청송 고형곤 선생의 직제자셨는데, 6.25전쟁이 발발했을 때, 그 경황없는 와중에도 그 분들을 찾아가 비상식량인 감자를 건네 드렸다는 전설 같은 미담이 전해진다.

그만큼 의리파였다. 인간적으로나 학문적으로나 참 배울 점이 많았다. 워낙 성격이 화통하고 발도 넓어 그 분의 인맥으로 우리는 좋은 수업도 들을 수가 있었다. 예를 들어 불교철학 수업은 동국대 교수님이, 유가철학 수업은 성균관대 교수님이 직접 와서 강의해주셨다. 실감의 수준이 달랐다.

유학 중에 나는 인연을 만나 결혼을 하게 됐는데 그 분은 우리를 위해 일부러 사군자 한 폭을 손수 그려 선물로 표구해주시기도 했다. 그런 다정한 교수님이 어디 많겠는가.

목포상고에 재학 중이었을 때 조선인 학생을 괴롭히는 일본인 동급생을 흠씬 두들겨 패주었다는 무용담을 그분은 여러 번 자랑스레 늘어놓기도 했었는데 하여간 호방한 성격이었다. 그 표정에서는 어딘가 고향인 신안 섬마을 특유의 바닷바람이 느껴지기도 했었다.

역사가 요동치던 1980년 7월 나는 일부러 일시귀국을 했고 광주를 거쳐 그분이 계시다는 목포로 내려갔다. 교수님은 부재중이셨다. 낚시를 하러 가거도에 가셨다고 친척분이 알려줬다. 배편을 물었더니 그 친척분이 펄쩍 뛰면서 만류했다. “그 양반이니까 거길 갔지 너무 위험해서 안 된다”는 것이었다. 나오시면 잘 말해줄테니 그냥 서울로 돌아가라고 몇 번이고 말하기에 아쉬움을 뒤로 하고 나는 서울로 되돌아 올라왔다. 그게 마지막이었다. 동경으로 되돌아간 후 얼마 뒤에 그 분의 부음을 접했다. 마지막 모습을 뵙지 못한 것이 지금까지도 한으로 남아있다.

세상에 선생은 많다. 그러나 제자를 알아주고 아껴주고 더욱이 그를 위해 수고를 마다않고 나서주는 선생님은 많지 않다. C교수님은 그런 많지 않은 선생님 중의 한분이었다. 나는 그분에게 아무것도 돌려드리지 못한 채 영원히 이별하고 말았다. 거기에 우리 현대사의 ‘역사’가 개입했다.

이제는 이런 식으로 그 분을 기억하고 반추하는 것만이 나에게 더할 수 없이 잘해주신 선생님께 대한 최소한의 보은일지도 모르겠다. 세상에는 ‘스승과 제자’라고 하는 관계가 있다. 인생을 풍요롭게 하는 아름다운 관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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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진한 2021-10-20 05:13:56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



@ Royal성균관대(조선.대한제국 유일무이 최고교육기관 성균관승계,한국 最古.最高대).Royal서강대(세계사반영,교황윤허,성대다음예우)는 일류,명문.주권,자격,학벌없이 대중언론항거해온 패전국奴隸.賤民불교Monkey서울대.주권,자격,학벌없는 서울대.추종세력 지속청산!

http://blog.daum.net/macmaca/733

http://blog.daum.net/macmaca/2967

윤진한 2021-10-20 05:13:21
승려賤民한국과비슷.강점기 하느님에 덤비며(창조신내리까는 부처처럼)유교부정,불교Monkey일본.하느님보다높다는 성씨없는 일본점쇠賤民.후발천황(점쇠가 돌쇠賤民.불교Monkey서울대 전신 경성제대설립)옹립.한국은 세계종교유교국.수천년 유교,하느님,조상신,공자 숭배.해방후 조선성명복구령 전국민이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복귀. 동아시아(중국,한국,베트남,몽고) 세계종교국중 하나인 한국이 불교Monkey 일본의 강점기를 겪으며 대중언론등에서 유교가 많이 왜곡되고 있음.

http://blog.daum.net/macmaca/3131

@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윤진한 2021-10-20 05:12:49
석전대제로 유교의 부분집합중 하나임.@일제강점기 강제포교된 일본 신도(불교), 불교, 기독교는 주권없음. 강점기에 피어난 신흥종교인 원불교등도 주권없음.

주권없는 패전국잔재 奴隸.賤民이자, 하느님.창조신을 부정하는 Chimpanzee계열 불교일본서울대Monkey와 추종세력들이 학교교육 세계사의 동아시아 세계종교 유교,윤리의 종교교육 유교, 국사등과 달리, 일본강점기때 일본이 유교를 종교아닌 사회규범으로 했으니까, 유교가 종교아니라고 최근 다시 왜곡하는데,이는 일제잔재 대중언론에 포진하여 루머수준으로 유교에 도전하는것임.한국은 미군정때,조선성명복구령으로 전국민이 조선국교 유교의 한문성명.본관을 의무등록하는 행정법.관습법상 유교국임은 변치않으며 5,000만이 유교도임.@인도에서 불교도는,불가촉賤民.조계종승려

윤진한 2021-10-20 05:12:16
동아시아 세계종교인 유교나, 서유럽의 세계종교인 가톨릭의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신 절대적 초월자이십니다.

@ 공자님의 시호. 하늘이 보내신 성자이신 성인 임금 공자님은 황제 칭호인 문선제(文宣帝).대성지성문선왕(大成至圣文宣王)의 오랜 전통으로 호칭되어 오고 있습니다.聖人에 이르신 스승(至聖先師). 은나라 왕족의 후손이신 공자님. 참고로 하면, 공자님 아버지 시호는 계성왕(啓聖王)이시고 공자님 어머니 시호는 계성왕 부인(啓聖王夫人)이십니다.

http://blog.daum.net/macmaca/3127

@한국 유교 최고 제사장은 고종황제 후손인 황사손(이 원)임. 불교 Monkey 일본 항복후, 현재는 5,000만 유교도의 여러 단체가 있는데 최고 교육기구는 성균관대이며,문중별 종친회가 있고, 성균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