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수아비가 보고 싶다
기고-허수아비가 보고 싶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1.08 17:4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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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철호/시인·수필가
장철호/시인·수필가-허수아비가 보고 싶다

풍성한 가을이 부르는 소리에 도심 인근 들판으로 걷기 운동을 나갔다. 코로나19로 집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지자 가벼운 운동으로 걷기를 하는 사람이 매우 많았다. 집을 나와 30분만 걸어가면 농촌 들판이다. 이 길을 걸을 때면 계절의 변화를 눈으로 읽고 피부로 느낀다. 씨를 뿌려 가꾼 곡식들이 누렇게 익어가는 가을 들판 농부들의 바쁜 일손을 외면하고 내 마음속에 풍부함만 가득 채우는 욕심을 부린다. 누구에겐가 먹지 않아도 배부르게 한 풍성함의 대가를 지불하지 않은 것 같아 미안함을 느낀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넓은 논에 모두 벼만 심더니 요즘은 고구마, 콩, 고추. 호박 등 잡곡을 심은 논이 1/5은 될 것 같다. 발걸음을 가볍게 해 주던 접시꽃 장미. 상사화에 이어 가을이 되어 코스모스가 한창이다. 이 길은 20여 년 전 부터 걸어 눈을 감고도 걸을 수 있다. 산과 들의 초목이 피고 지고, 농부들이 농작물을 가꾸고 수확하는 것이 반복되지만 볼 때마다 새롭게 느껴져 걷기운동을 하는 이유를 충분히 알려준다.

모두가 무르익은 가을인데 들판에 허수아비가 없어 미완성 가을이 되었다. 허수아비가 있어야 가을이 완성된다. 온갖 곡식이 누렇게 익은 가을 농촌들에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허수아비가 보이지 않는다. 농부를 대신하여 24시간 밭에 서서 새들로부터 농작물을 보호하는 허수아비다. 그뿐 아니다. 새들도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았다. 때지어 다니던 비둘기, 까치, 참새들이 한두 마리만 보였다. 코스모스가 필 때면 손에 잡힐 것 같이 많던 고추잠자리도 한두 마리만 그도 찾아야 볼 수 있을 정도다. 나비도 거의 보이지 않는다고 해도 될 것 같고 벌도 그 솟자가 나무나 줄었다.

분명 논과 밭의 최초의 주인은 새와 벌 나비들이다. 인간이 빼앗아 밭과 논을 일구어 곡식을 심었다. 이들에게 다른 삶의 터전을 제공하지 않았다. 산과들을 파헤쳐 건물을 짓고 독한 농약으로 농사를 짓고 과다한 이산화탄소 배출로 공기를 나쁘게 하여 생태계에 변화를 주어 새들이 오지 못하게 막았다. 새들은 이런 죄를 짓고도 뉘우침이 없는 사람들의 눈치를 보면서 먹이를 찾는다. 새들이 오지 못하게 허수아비까지 세워 이제 새들이 농촌에서는 살지 못하는 때가 온 걸까 하는 생각이 든다.

농부들을 비웃기라도 하는 것 같이 새들이 허수아비 머리에 앉아 노는 모습이 보고 싶다. 나무 막대기로 십자가를 만들어 옷을 입히고 헌 옷 등으로 머리 모양을 만들어 밭 가운데에 세워둔 허수아비는 몇 년 후면 들녘에서 완전히 사라질 것 같다. 자라나는 어린애들이 허수아비가 무엇인지 묻는 날이 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하동군 평사리 들녘 등 허수아비 축제 때 여러 가지 모양의 오색찬란한 많은 허수아비를 볼 수 있다. 그런 허수아비는 상업용 전시품이다. 맥이 흐르지 않는다. 농부가 가도 모른척하면서 자기를 뽐내기에 바쁘다. 이런 허수아비는 새들이 오히려 놀이터 인양 눈요기를 하면서 찾아 든다.

농부 할아버지가 옷 한 벌을 주어 입힌 허수아비는 언제나 외발로 서 있는 또 다른 농사꾼이다. 소 달구자가 없는 농촌에 허수아비마저도 없어지는 날이 가까이 온 것 같다. 새가 없어 허수아비가 없어지는지 허수어비가 없어 새가 오지 않는지 묻는 어리석은 말이 나오지 않을까 너무나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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