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사람들 이야기-장면7
아침을 열며-사람들 이야기-장면7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2.02 17:40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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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사람들 이야기-장면7 


아마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싶은데 성장기를 뒤돌아보면 ‘특별한 친구’라고 할 수 있는 누군가가 한두 명은 있다. 나에게도 그런 친구가 있었다. KSI, 그는 중학교 동창이었다. 60년대 초였고 아직 치열한 중학교 입시가 있을 때였다. 그는 재수를 했는지 또래보다 한 살이 위였고 공부도 잘한 데다 성격도 점잖았던 탓에 동기들 모두에게 좀 ‘특별한’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 당시 청소년 필독서 1순위였던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에 나오는 그 데미안 같은 존재라고 할까. 하여간 ‘뭔가 다른’ 이미지로 그는 각인되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은 독서로 인한 그의 박식함과 새에 대한 관심이었다. 스위스인 뺨치는 수준급의 요들송은 덤이었다. 지금 생각해봐도 흔치 않은 사례였다.

그는 새를 엄청나게 좋아했었고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지식을 갖고 있었다. 거의 조류백과 수준? 당시의 감각으로는 거의 모든 새의 소리를 구별해 모사할 수 있었고 대충 보고도 그게 무슨 새인지를 알아맞혔다. 그의 별명이 ‘새박사’가 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직박구리니 박새니 황조롱이 같은 것도 그때 그를 통해 처음 알게 된 이름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중학생인 그때 이미 자기 손으로 직접 새의 박제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의 집에 놀러갔을 때 넓지 않은 그의 방이 박제로 가득 찬 것을 보고 나는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날개를 펼친 매의 박제는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나와는 문예반 활동을 함께하며 친해졌지만 그는 조류학자가 되는 게 꿈이라 했다.

그런데 인생이란 참 뜻대로 되기가 쉽지 않다. 그는 중학교 때 수학과 악연이 생기면서 고등학교 때는 결국 이과를 포기하고 문과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그와의 아름다운 추억담이 가득하다. 그는 총학생회장을 맡아 리더쉽도 발휘했다. 그때도 지금의 ‘일진’ 비슷한 친구들이 있었지만 그만은 절대 건드리지 않았다. 일종의 성역이었다. 박식과 점잖음에 대한 평가가 당시에는 불문율처럼 통하고 있었다.

그런데 그는 끝까지 특별했다. 문과였음에도 그는 대입에서 이과인 ‘생물학과’에 도전했고 합격했다. 조류학자에 대한 꿈을 버리지 않은 것이다. 어떤 인연인지 나는 그와 대학원까지도 같은 학교를 다녀 그의 그 성장과장을 고스란히 지근거리에서 다 지켜보았다.

학부를 마치고 같이 조교를 하고 있을 때였다. 그나 나나 책 읽고 글 쓰는 건 그럭저럭 하는 편이었지만 인간관계는 영 숙맥이라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보고 졸업을 한 터였다. 어느 날 그가 술에 떡이 되어 내 자취방을 찾아왔다. YM이 가족을 따라 미국으로 이민을 가게 됐다고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그리고는 긴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YM은 같은 과 조교를 하던 동기였는데 명문 여고 출신에 학과수석으로 입학한 재원이었다.(참고로 그는 차석이었다.) 명문출신에 공부도 자기보다 잘하고 집안도 짱짱하고 인품도 착하고 거기다 누구라도 눈길이 가는 미인이었다. 바로 그 때문에 평범한 출신이었던 그는 언감생심 마음도 먹어보지 못하고 4년을 보냈는데 막상 미국으로 가버린다니 뭔가 무너져내리는 기분이 들더라는 것이었다. 자기가 그녀를 깊이 사랑하고 있었다는 걸 이제야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은 같은 실험실 조교를 하던 후배 녀석에게 그런 심정을 슬쩍 흘렸더니 그 후배가 깜짝 놀라며 “형이 하나도 티를 안 내니까 그런 줄 전혀 몰랐다. 그렇다면 4년 이상 바로 옆에 있으면서 왜 대시를 하지 않았느냐. 형 참 바보다. 내가 알기로는 그 누나도 형에게 호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던데. 지금이라도 고백을 해보는 게 어떠냐”라고 말하더라는 것이다. 나도 그러기를 권했다.

그 며칠 후 그가 다시 찾아왔다. 표정이 달라졌다. 드디어 용기 내서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너무나 뜻밖에 즉각 그녀의 반응이 있더라는 것이다. 그에 대한 그녀의 호감을 확인한 것이다. 그러나 어쩌리. 그녀는 출국을 앞두고 있었다.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어버린 것이다. 난들 해줄 말이 없었다. 다시 며칠 후 그녀는 예정대로 가족들과 함께 미국으로 이민을 떠났다. 그는 다시 어깨가 쳐졌다. 마치 구름을 밟는 듯한 자세와 초점 잃은 눈동자로 그는 멍하니 시간을 보냈다. 그런 가운데 나는 조교생활을 정리하고 예정돼 있던 일본유학을 떠났다.

1980년, 격동하던 시절이었다. 언어-문화 등 모든 것이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느라 나도 정신없이 도쿄에서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후,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우편함에 그림엽서가 한 장 도착해 있었다. 발신자는 SI였다. 그런데! 응? 뜻밖에 발신지가 USA였다. 그는 YM이 떠난 후 모든 조건을 총동원해 그녀의 뒤를 쫓아 자기도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으며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후 그녀와의 본격적인 연애를 시작했고 오늘 그녀와 함께 나이아가라 폭포에 다녀왔다는 간단한 소식이었다. 감동이었다. 영화나 드라마는 아니지만 이런 러브스토리가 어디 흔한 것인가! 흐뭇한 미소가 한동안 나의 입가를 떠나지 않았다. 진심의 진심으로 그들을 축복해 주고 싶었다.

그는 결국 그녀와 결혼해 가정을 이루고 멋진 두 아들을 두었다. 그런데 영화나 드라마라면 거기서 ‘해피엔드’이겠지만, 현실은 그렇게 만만치가 않다. 그녀는 미국 현지에서 직장을 얻어 자리를 잡았지만 같은 지역에서 그가 원하는 곳에 취직을 하기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드넓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이산가족으로 사는 것보다는 차리리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낫겠다고 그들은 결론을 내렸다. 다행히 그는 국립 모대학에 교수로 초빙되어 개선했다. 좀 늦은 취직이었지만 그는 열심히 연구하고 강의해 훌륭한 교수님으로 평가받았다. 조류학계의 권위자가 되었다. 당시 멸종위기에 처한 국내 황새 복원에 결정적으로 기여해 9시 뉴스에도 몇 번 얼굴을 내밀었다. 나와 그는 서로 지역이 멀리 떨어져 있는 데다 각자 생활이 바빠 가끔씩 전화로만 안부를 주고받았다. 수년이 순간처럼 지나갔다.

그러던 어느 날 삐리릭, 문자가 왔다. 그걸 열어본 순간 나는 경악하고 얼어붙었다. 그가 응급실에 입원중이며 위독하다는 소식이었다. 그의 조교가 보내온 것이었다. 수업이 있는데도 교수님이 오시지 않아 숙소를 찾아갔더니 혼자 댁에서 쓰러져 계시더라는 것이었다. 만사 제쳐놓고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의 얼굴을 본 것은 유학을 떠난 후 처음이었다. 중년이 된 그가 환자의 모습으로 누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눈물이 맺혔다. 그의 손을 아플 정도로 쥐고 다정한 말을 건넸지만 그는 의식이 없었다. 응급실이라 면회는 제한적이었다. 납덩이처럼 무거운 발을 겨우 끌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조교가 부고를 알려왔다. 그와의 추억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때, 대학교 때, 조교할 때..., 소설로 써도 여러 권이 나올 대하편이다.

장례식 때 그의 아내가 된 YM을 오랜만에 만났다. 미국으로 되돌아가기 전 다시 만나 긴 이야기를 나누였다. 내가 알지 못하는 그의, 아니 그와 그녀의 ‘미국시절’이 있었다. 치열했지만 아름다웠다. 그를 쏙 빼닮은 그의 두 아들도 장례식 때 처음 만났다. 반듯하게 잘 자란 느낌이 외모와 말투만으로도 충분히 짐작되었다. 며칠 후 그녀와 두 아이들은 그들의 보금자리가 있는 미국으로 되돌아갔고 그는 땅속으로 되돌아갔다.

그로부터 수개월 후 고등학교 동창들 중 한 명이 등기우편을 보내왔다. 책이 한 권 들어있었다. ‘하늘로 날아간 새’라는 제목. 그의 추모집이었다. 그 책의 첫 페이지를 가득 채운 사진 속에서 그는 환하게 웃고 있었다. YM에게 마음을 고백하고 그녀의 사랑을 확인했다고 알리던 그날의 그 표정에 있던 그런 웃음이었다.

나는 아마도 마지막 날까지 그를 잊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아마 다른 동창들도 다 그럴 것이고 새를 사랑하는 이 땅의 모든 애호가들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는 참으로 특별한 존재였다. 그의 영혼이 지금 하늘나라에서 새처럼 자유롭게 날갯짓하고 있을 것을 나는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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