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기고-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1.12.21 17:2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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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원태/사천시 공중보건의사
장원태/사천시 공중보건의사-고향으로 보내는 편지

지난 주말, 바람이 지나가는 서울 하늘에는 눈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어느새 파견되어 일을 시작한지 2주가 넘었습니다. 오늘도 근심 어린 마음으로 병동의 환자들을 불편하지 않게 노력할듯합니다. 마음속에 하나 둘 새겨지는 불만들과 어려움을 꾹꾹 누르다보니 오늘 아침이 왔고, 이렇게 내일도 올듯합니다. 아직 저의 임무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네, 저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으로 파견와서 코로나19 환자들을 치료하고 있는 사천시 공중보건의사입니다.

처음에는 사람들의 무한한 공포심을 불러일으키며 시작한 코로나19 바이러스는 창궐한 시점부터 1년이 훌쩍 지났건만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고, 그동안 비교적 안정된 시스템으로 돌아가던 현대 사회를 비웃기라도 한 듯 우리의 관행들을 초토화 시켰습니다. 보건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모두가 처음 겪는 특이한 상황, 여기에서 공중보건의사들은 대구 신천지 사태에도, 집단 발병하여 코호트 격리된 병원의 환자에게도, 선별진료소 업무에도, 수많은 코로나백신 예방접종센터와 생활치료센터에도 다 파견되어 열심히 방역과 치료에 힘썼습니다. 이런 노력들에도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저는 서울의 대형 대학병원에 파견되어 다시 한 번 새로운 임무를 부여받았습니다.

2주가 지난 지금, 중증 환자들을 보살피면서 느낀 점은 분명 코로나19 바이러스는 무섭지만 환자는 무섭지 않습니다. 보건소 진료실에서 진료 보러 오시던, 원격의료로 매일 대화 나누던 우리 동네 할아버지, 할머니들과 다 같은 사람들입니다. 바이러스가 나쁜거지 우리는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천시를 떠나온 이후에 사천시에도 확진자들이 많이 나왔다고 전해들었는데 그것은 바이러스가 잘못한 것입니다.

‘이네들은 너무나 멀리 있습니다.
별이 아스라이 멀듯이.

...(중략)

그러나 겨울이 지나고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내 이름자 묻힌 언덕 위에도
자랑처럼 풀이 무성할 거외다’

문득 일제강점기 시절, 독립을 갈망했던 윤동주 시인의 시 ‘별헤는 밤’이 떠오릅니다. 우리도 한 세기 전 선조들처럼, 현재에도 자유를 갈망하고 있습니다. 100년 전에 모두가 손을 잡고 만세를 외쳤듯이 우리도 다 같이 힘을 합쳐 일어설 때입니다. 모두들 부디 지치지 말고 기다려주세요. 저도 언젠가 파견 근무가 끝나면 다시 고향으로 돌아가 함께 하겠습니다. 날이 춥습니다. 옷 따뜻하게 입고 마스크 잘 쓰시고 손 위생에 신경 쓰세요. 이만 편지 줄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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