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고 항일투사 10명 내가 발굴
진주성-진주고 항일투사 10명 내가 발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1.05 17: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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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진주고 항일투사 10명 내가 발굴

조정래(趙正來)항일투사는 경남 하동군 옥종면 출신으로 투사 조복애의 오빠이다. 1931년 2월 진주공립보통학교(진주고)3학년 재학 중 동맹휴교를 단행하고 퇴학처분 되었고 본격적으로 항일투쟁을 하기 위해 일본 동경전기학교에 입학, 일본반제동맹에 가입해 적색구원회에 가입했고 공산주의협의회에 들어가 활동했다. 1932년 서울에서 반제동맹에 가입 활동하고 범태평양 민족대표대회에 대표자로 오오사카에 파견되었다가 체포되어 1934년 12월 징역 4년형이 언도되었고 옥중투쟁을 계속하다 옥중순국(獄中殉國)했다. 미혼(未婚)으로 직계후손이 없어 필자가 정부포상을 추진해 2008년 8월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도록 해 드렸다.

1944년 진주고에 재학 중인 학생 11명이 역사 학습과 토론을 위하여 라는 명목으로 광명회를 조직했다. 일제는 전 세계를 향해 태평양전쟁을 일으키고 학생들을 총동원해 진해 비행장 건설 공사 등에 동원되자 비밀 단체를 조직해 활동하게 된다. 강제 노역장에서 활동이 일경에 발각되어 진해 헌병대에 감금된 채 엄중한 조사와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혼절하기도 했다.

부산지방법원에서는 전쟁 중이라 정식 재판없이 교도소(형무소)에 구금 중이었는데 5~10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광명회원 중 하익봉(1926~1945)은 혹독한 고문을 견디지 못하고 미혼(未婚)으로 옥중순국 해 내가 앞장서서 발굴, 신청했고 2010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케 했다. 옥중 순국한 사실이 밝혀지자 보훈처에서는 단순한 친목 단체가 아님을 인지하고 내가 2009년 4월 29일 부산구치소에서 발급받은 입소확인서 등을 보고 정부표창이 결정되는 계기가 되었다.

강필진(1927~2006년), 박노근(1928~1955년), 김용실(1928~2004년) 등은 2010년 3.1절에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도록 해 드리고 김상훈(대구 수성구 범어동 거주), 정규섬(진주시)등에게는 대통령 표창이 수여되도록 주선했다. 하익봉 선생은 사천시 선구동 출신이고 강필진 선생은 진주시 상봉서동 출신이고 박노근 선생은 산청군 단성면 단계리 출신이고 김용실 선생은 하동군 양보면 감당리 출신이다. 김상훈 선생은 생존중 표창이 수여되었고 산청군 신등면 평지리 출신이고 표창을 받게 되었다.

2009년 2월에 진주고 동창회 송찬순 등 3명이 찾아와 정부 포상이 성사되도록 해 달라하여 내가 시작된 일인데 상을 받자 곧 하동, 산청, 진주 등에 7장의 축하 현수막을 걸었으나 지금까지 현수막 비용조차 받지 못하고 감사장 한 장도 받지 못했다. 막내 삼촌께서 미친 짓을 그만하라는 말씀이 기억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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