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송년회고
진주성-송년회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1.11 17:2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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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송년회고

세상사 시빗거리를 만들자면 어느 것 하나 안 될 것이 없을 것이다. 이쪽이라면 저쪽이 있어 언제나 양면성으로 맞설 것이지만 ‘그럴 수 있지’ 아니면 ‘그러려니’하고 인정하거나 용인함으로써 무난하게 넘긴다. 그러나 두루뭉술하게 맺고 끊음이 없어 덜 꺼진 불씨가 후한을 불러올까 염려되는 반면에 옥석을 가리며 옳고 그름을 따지면 매정하다고 할 것이다.

산을 넘자니 범이 무섭고 강을 건너자니 물이 무서워 망설이게 되는 것이 우리의 처신이다. 그래도 모두가 용하게 살고 있다. 여기에는 ‘나와 너 그리고 우리’라는 구조체계가 사회공동체로 맞물려있어서다. 그 틈새에 있는 ‘나’라는 것은 어떤 존재로 무슨 역할을 하고 있을까.

성찰의 여유를 잊고 살다가 해가 바뀌는 어우름이면 한 해를 돌아보게 된다. 이럴 때는 외진 곳에 돌아앉아 없는 듯이 고즈넉한 산사의 들머릿길이 호젓하게 좋아 낯익은 산길을 걷게 한다. 지난날의 온갖 생각들이 벌떼처럼 달려들고 노송의 가지 끝을 흔들던 바람이 머릿속을 휘젓는다. 번뇌일까. 심란해진 마음을 다잡으려고 바윗돌에 걸터앉았다. 지나온 날들이 소름 돋치게 아슬아슬하다. 딴에는 나부대며 바둥거렸지만, 탐나는 것에만 눈길을 주고 솔깃한 소리에만 귀를 기울이며 뜬구름 잡듯 한 허송세월의 혹독한 대가를 치르지 않은 것이 팔자일까 행운일까?

오르지 못할 벼랑을 빈손으로 타오르며 실족하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삼으며 구물구물 지는 해를 붙잡고 그저 고마워한다. 더는 서글퍼지지 않으려고 ‘이만하면 족하지!’하고 나를 달랠 때가 가족에게 제일 미안하다. 변명이라고 할지 몰라도 세상은 과정은 무시되고 언제나 결과로만 평가된다. 건너뛰기에 익숙해져서 오지랖이 식어가는 것을 모르고 산다.

알고 보면 내가 앉은 이 바윗돌도 하늘에서 뚝! 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다. 고단한 사람이 있을 줄 알고 누군가가 힘들어하며 옮겨놓은 것이다. 비 오는 날, 바람 부는 날, 눈보라가 치던 날이었는지도 모르고 나는 그냥 내 편안하게만 앉았다. 탁발승이 걸머진 업보의 바랑을 내려놓던 쉼터일까, 공양미를 이고 가던 아낙이 잠시 허리를 펴던 바위일까, 과정도 사연도 깡그리 무시하고 오늘의 나는 서슬 시퍼런 현실을 깔고 오뚝하게 앉았다. 우리는 무엇에 쫓기고 있어 과정은 무시하고 결과에만 목을 매는가? 마주하면 헛갈리고 보내고 나면 후회뿐인 지난날들을 탈 없이 보낸 오늘이 그저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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