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사라진 것들머지않은 70을 바라보면서 이런저런 상념이 많아진다. 거울 앞에 서면 어느샌가 머리를 뒤덮은 백발을 보며 사라진 젊은 날의 저 윤기 자르르하던 흑발을 그리워하기도 하고, 어린 시절 한없이 드넓어 보이던 학교마당과 저 낙동강변의 새하얀 백사장을 그리워하기도 한다. 돌멩이 하나로도 하루 종일 즐거웠던 저 어린 날의 동심과 저물도록 같이 어울려 뛰놀던 ‘동무’들의 얼굴도 그립다. 그리고 한없이 따뜻하고 든든했던 아버지와 어머니. 지금은 다 사라지고 없다. 인생은 ‘상실의 연속’이라는 진리를 자연스럽게 깨닫는다.
시대인들 나라인들 다를 바 있을까. 내 기억 속에 있는 1950년대에서 지금 2020년대까지 세상은 엄청난 속도로 변해왔고 엄청난 발전을 이룩했다. 지금 우리들의 삶의 양상은 어쩌면 1960년대의 어린 우리들이 상상하던 ‘미래’ 그 이상이다. 비록 ‘비행접시’는 아직 없지만 휴대폰과 인터넷 같은 것만 봐도 그 발전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러나 모든 것에는 양면이 있고 빛에는 반드시 그늘이 있는 법. 우리는 그 발전의 과정에서 새롭게 얻은 것만큼 많은 것들을 그 세월의 강물에 버리고 왔다. 그것을 보통 잘 의식하지 못한다. 옹기도 장롱도, 유기전도, 대장간도 거의 다 사라졌다. 이웃 간의 정도 사촌 간의 우애도(아니 형제간의 우애조차도) 거의 다 사라졌다. 선진세계에 대한 이른바 ‘동경’도 사라졌다. 역시 ‘상실의 연속’이다.
나는 그 후과가 두렵다. 이 ‘균형의 상실’은 후자를 내다버린 이 시대에 대해 이윽고 엄중한 책임을 물을 것이다. 철학자로서 단언한다. 그 벌의 하나는 아마도 ‘세상의 천박화’ ‘인간의 천박화’일 것이다. 그것은 삶의 하늘에서 가치의 별들이 사라진 세상을, 그 대신 혼탁한 욕망의 미세먼지가 가득한 세상을 열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우리는 이미 그 형기를 시작했다.
요즘 나는 공자-노자-부처-예수에 이어 소크라테스를 소환하고 있다. 그는 이른바 ‘가치론’의 원조 격이다. 진-선-미, 정의, 덕, 용기, 사랑, 지혜, 준법 등등의 가치가 그를 통해 인류의(구체적으로는 유럽인의) 삶의 무대에 올려졌다. 모두 다 우리가 세월의 강물 속에 내다버린 것들이다. 요즘은 누구도 이런 것을 주목하지 않고 입에 담지 않는다. 아니, 입에는 담는다. 그러나 누구도 소크라테스처럼 그 진정한 본질을 묻지는 않는다. 오직 그 표피적인 허상만이 사람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좀 과장하자면 요즘 이런 말을 내세우는 자들 중엔 의외로 가짜가 많다. 속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그 말들이 그들의 어떤 욕망과 연결되어 있는지를 예의주시해야 한다.
‘상실의 시대’, 오늘은 또 무엇을 잃게 될까. 오늘 우리가 내다버린 것 중에 혹시 금목걸이가 잘못 들어가 있지는 않은지 다시 한 번 그 쓰레기봉투를 살펴보기로 하자. 아직도 우리에게는 남은 보물이 적지 않게 있다. 보물 같은 사람들이 그중에서도 가장 소중한 보물이다. 그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그게 누굴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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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는 수천년 유교사회입니다. 공자님 이전의 始原유교는 기독교에서 말하는 예수님 이전의 구약성서 시대에 해당됩니다. 하느님(天).神明,조상신 숭배가 유교의 큰 뿌리입니다. 유교는 국교로, 주변부 사상으로는 도가나, 음양가, 묵가사상등이 형성되었고, 법가사상은 이와는 다른 현실적인 사상이며, 국가의 통치에 필요한 방법이었습니다(진나라때 강성하고, 유교나 도교와 달리, 한나라때 율령이 반포되어 이후 동아시아에 유교와 별도의 성격으로 국가통치에 활용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