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TV 단상
아침을 열며-TV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1.19 17: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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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TV 단상

장기화되는 코로나 사태로 집안에 갇혀 지내며 TV를 보는 일이 많아졌다. 주변에 보면 ‘바보가 된다’며 TV를 혐오하는 사람들도 없지 않은데,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TV예찬론자다. 돈 드는 고급 스포츠 같은 걸 별로 즐기지 않는 성향이라 무료한 시간 때우기로는 TV만한 것이 없다. 기술적으로도 우리나라가 전 세계 TV시장을 거의 장악하고 있다니 더 이상 바랄 게 없다. 크기도 화질도 최고 수준이고, 위성이나 케이블을 통하면 채널도 500단위가 넘는다.

그런데 요즘 이 TV에 좀 문제가 있다. 간단히 말해 ‘별로 볼 게 없다’. 문화평론가는 아니지만 시청자의 한 사람으로서 느끼는 솔직한 심정이다. 채널이 전문화되면서 전통적인 공중파의 위상과 의미는 급전직하했다. 나도 요즘은 그것을 보는 일이 거의 없다. 뉴스는 뉴스전문 채널을 보고 드라마는 드라마 전문 채널을 보고 영화는 영화전문 채널을 본다. 스포츠는 애당초 별로 선호하지 않아 채널 자체가 의미가 없다. 남은 것은 교양인데, 어느 방송사든 특별히 구미를 당기는 프로가 별로 눈에 띄지를 않는다. 다른 시청자도 나와 크게 다르지 않을 테니 K사든 M사든 S사든 대오각성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시청료 인상이나 중간광고 허용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관건은 결국 콘텐츠의 질이다.

나의 경우는 홈쇼핑도 하지 않으니 이리 빼고 저리 빼고 하다보면 채널이 몇 개 남지도 않는다. 500이라는 단위가 완전히 무색해진다. 다행히 나에게는 남은 선택지가 조금 있다. 선호하는 드라마와 영화 그리고 여행채널 외에도 중국관련 일본관련 채널들이 있다. 북경과 동경에 1년 이상 살다온 적이 있어 자연스럽게 생긴 관심이다. 보다 보면 역시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것들이 있다. 그런 건 좀 이야깃거리가 될 법도 싶다.

거친 요약은 물론 한계가 있겠지만 일단 느껴지는 건 ‘일본의 정체’와 ‘중국의 도약’이다. 일본의 프로들은 내가 살았던 1980년대와 비교해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오히려 약간 퇴보가 느껴지기도 한다. 내용도 옛날의 되새김질 같은 게 많다. 물론 나는 옛날 거기 살았을 때 생각을 하며 재미있고 즐겁게 보기는 한다. 드라마만 하더라도 일본은 이미 우리 한국에게 추월 당한지가 오래다. 그 수준 차이가 확연하다. 최고의 장수프로에 인기프로인 NHK의 연말대미 ‘홍백가합전’도 이미 그 한계점에 다다랐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그런 한편 중국 프로들은(물론 영화와 드라마에 한정된 이야기일지 모르겠지만) 비약적인 발전을 보여준다. 그 수준이 만만치가 않다. 최근 들어 다소 침체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것들보다 더 우수하다는 느낌의 작품들도 적지 않다. 이미 세계적 평가를 받은, ‘붉은 수수밭’ ‘오일의 마중’ ‘집으로 가는 길’ 등등 궁리와 장쯔이가 나오는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들은 물론 ‘랑야방’ ‘이가인지명’ ‘녹비홍수’ ‘옥루춘’ ‘사마의’ 등의 드라마는 국내에도 상당한 팬층을 확보한 양상이다. 나도 그 팬의 한 사람이다. 특히 그 의상, 소품, 배경 등은 우리의 것을 압도한다. 아마도 비약적 경제성장을 이룬 중국의 남다른 예산규모가 그 배경에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를 우리는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전통적인 문화대국 혹은 문화강국인 중국과 일본 사이에 놓인 우리 한국은 이 양국의 문화를 참고하고 즐길 수가 있다. 이것들이 우리문화의 질을 견인하는 측면도 있다. 이젠 우리도 그 1/3의 지분을 가진 당당한 문화대국, 문화강국의 하나가 되었다. ‘대장금’도 ‘겨울연가’ ‘가을동화’도 ‘사랑의 불시착’도 그리고 ‘오징어게임’도 그리고 ‘기생충’도 ‘미나리’도 전 세계가 인정하는 수작이다. 전 세계가 박수를 쳤다. 한국인으로서 뿌듯한 긍지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이제 ‘그 다음’이다. 경제가 그랬듯, 문화도 역시 움직이는 유기체이다. 올라갈 수도 있고 내려갈 수도 있음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나의 아저씨’(2018) ‘호텔 델루나’(2019) ‘사랑의 불시착’(2020) 이후 전통 채널에선 이렇다 할 화제작이 없다. 넷플릭스의 등장과 함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이런 변화에 어떤 시대적 구조변동이 있는 것은 아닌지, 그게 혹 쇠락을 향한 것은 아닌지 나는 살짝 우려의 눈빛으로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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