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2.12.10 1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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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곤/밀양동명고 교사ㆍ경남국학원 이사

최치원(崔致遠) 선생은 경주최씨(慶州崔氏)의 시조로서 자는 고운(孤雲),해운(海雲)이다. 부산 해운대가 바로 최치원선생의 얼이 숨 쉬고 있는 곳이다. 869년(경문왕 9) 13세로 당나라에 유학하여 874년 과거에 급제하고 선주(宣州) 표수현위(漂水縣尉)가 된 후 승무랑(承務郞) 전중시어사내공봉(殿中侍御史內供奉)으로 도통순관(都統巡官)에 올라 비은어대(緋銀魚袋)를 하사받고, 이어 자금어대(紫金魚袋)도 받았다. 879년(헌강왕 5) 황소(黃巢)의 난 때는 종사관(從事官)으로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을 초하여 문장가로서 그 명성을 널리 떨쳤다. 고운은 당대 신라와 당나라를 아우르는 최고의 학자라고 칭했다.

885년 귀국 후 한림학사(侍讀兼翰林學士) 수병부시랑(守兵部侍郞) 서서감지사(瑞書監知事)가 되었으며, 894년 시무책(時務策) 10여 조(條)를 진성여왕에게 상소했다. 말년에는 해인사(海印寺)에서 여생을 마쳤는데 난랑이라는 화랑의 비문에 적힌 자료가 우리의 선도사상이 얼마나 위대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고운은 대변 해주고 있다.
난랑비 서문(鸞郞碑 序文)-國有玄妙之道 曰風流 設敎之源 備詳仙史(국유현묘지도 왈풍유 설교지원 비상선사), 實內包含三敎 接化群生 且如入則孝於家(실내포함삼교 접화군생 차여입즉효어가),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處無爲之事(출즉충어국 노사구지지야 처무위지사 ),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諸惡莫作(행불언지교 주주사지종야 제악막작), 諸善奉行竺乾太子之化也(제선봉행 축건태자지화야)
나라에 현묘한 도(道)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 그 교(敎)를 창설한 내력은 仙史에 자세히 실려 있으니 실은 삼교(유교, 불교, 도교)를 포함하고 있는데 만물을 접하여 교화한다. 들어와서는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는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노사구의 뜻과 같은 것이요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교를 행함은 주주사의 종지(宗旨)와 같은 것이요 악한 일은 하지 말고 선한일은 받들어 행하는 것은 축건태자의 교화와 같은 것이다.
△노사구(공자가 노나라에서 대사구의 벼슬을 하였음으로 공자를 말함) △주주사(노자가 주나라의 주하사의 벼슬을 하였으므로 노자를 말함) △축건태자(축건은 천축의 별칭으로 인도를 일컬음이요 태자는 석가를 말함). 이 내용은 고등학교 수능시험에도 심심찮게 나온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선도에는 유, 불, 선3교를 포함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 듣는 사람들은 너무 국수적인 사고방식이라고 할지 모른다. 역으로 말하여 그 만큼 우리는 외래의 정신과 사상, 종교에 물들어 우리의 사상, 철학, 상고사가 얼마나 위대하고 오래 되었는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 예로 절에 가보면 대웅전이 있는데 원래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우리는 환웅전이라 하여 한인, 한웅, 단군을 모셔놓고 시시때때로 천부경, 삼일신고, 참전계경을 외우며 선도수련을 하였는데 불교가 들어오면서 환웅전은 부처를 모시는 대웅전으로 바뀌고 우리의 조상님들은 대웅전 뒤로 옮겨져 산신각, 삼신각, 칠성각에 모셔 놓았던 것이었다. 그 흔적은 산신각에 들어가 보면 할아버지가 호랑이를 타고 있는데 바로 곰을 숭상하는 천손족 웅족이 호랑이를 숭상하였던 지손족 호족을 교화하고 있는 상고사를 말해주고 있는 것이다. 이제 부터 절에 가서는 먼저 산신각에 참배를 하고 대웅전에 가야 할 것이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절이라도 산신각이 대웅전 보다 조금 이라도 위에 있다. 절이란 용어도 원래는 저의 얼을 뜻하는 말로서 저의 얼을 찾고 수행하는 선도 수련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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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명성 2013-01-03 14:48:19
고운 최치원 선생님...님을 존경합니다...잊지 않겠습니다.
어제는 홍암선생님 생가에 참배를 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