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뚜렷한 목표 하나
아침을 열며-뚜렷한 목표 하나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10 17: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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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
이정례/새샘언어심리발달상담센터 원장-뚜렷한 목표 하나

젊은이에게는 옛날이야기가 될 수도 있다. 넓게 보면 우리의 현대사일 수도 있을 터. 필자가 신세대라 하던 대학 신입생 때는 데모라 부르던 민주화바람이 살짝 꺾이던 시절이었다. 각 개인들에게는 핍박 뿐 실질적 이득도 없는 민주화를 위해 그렇게들 몸을 아끼지 않고 민주화를 요구하였다. 돈이나 이익은 숫자가 강한 일과 직장에서 중요했다면 살을 부대끼는 가족, 인간적인 매력으로 가까운 친구와 함께 하며 조금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이 메우고 보완하면서 정이든 우정이든 지켜 왔다.

세대차이도 있지만 너무 빠른 현대문명의 물살을 버겁게 느끼며 오늘을 살고 있다. 자본주의의 혜택은 필자에게는 늘 멀리 있었다. 이번 생에서 몇 십 년을 살았으나 무엇을 하고 있는지 늘 스스로에게 묻고 대답하는 중이니. 하지만 지금처럼 자본주의의 한계를 실감한 적이 있었던가? 몸 또한 자본주의와는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사람의 가치에 대해서 생각해본다면 초라해지는 요즘이다. 지식을 얻을수록 사람에 대한 믿음도 사라지는 느낌이다. 결국 욕심덩어리일 뿐인가?

자본주의 국가에서 누구나 경제적인 부가가치를 얼마나 발휘하는지가 중요하다. 옛 이야기 속 주인공처럼 착한가, 나쁜가는 도덕적 잣대일 뿐. 더구나 이러한 바이러스 창궐시대에 말이다. 이토록 변화무쌍한 시대에 시대보다 더욱 빠르게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성공을 거둔다.

백성의 반 이상이 주로 농사를 짓던 과거에는 해를 따라 착하게 모험 없이 안전주의로 살아도 무방하였다. 지금은 흐름이 너무 빠른 시대라 평범하게 열심히 살아도 뒤쳐지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경쟁의 시대에 낙천적 성향은 좋은 자산이기도 하다.

한 개인에게 평균 수명은 큰 의미가 없다. 가는 날은 아무도 모르기에 사는 동안 최선을 다하여 내 소명을 이루고 간다면 좋겠다. 하루하루 충실하게 살다가 어느 순간 스스로를 돌아보는 날에는 만나고 싶었던 사람과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 중 어느 한 사람과 마주한다. 거울 속 원하지 않은 모습의 찡그린 사람, 밝은 표정을 한 괜찮은 사람 누구를 만나고 싶은가?

그래서 지금 무엇을 할까? 현재 시간을 100% 만족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몇 명이나 될까? 옛 말에 바쁠수록 돌아가라고 조금은 낙천적일 필요가 있다. 과거를 지나오며 누적된 역사적 발전 위에 차곡차곡 현재까지 이루어져왔다. 과거를 통해 배울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나의 현대사를 바꾸는 시점은 늘 현재이다. 현재를 통해 미래를 실현한다. 미래도 중요하지만 과거를 평가하는 것도 중요하다. 존재하는 것 어느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 중에 다 누릴 수 없다. 이것은 존재의 한계이기도 하다. 어느 시점 어느 곳에 좌표를 찍으며 살고 있다. 양자역학에서 ‘그것’이 여기도 있고 동시에 저기에도 있을 수가 있는 것인지 필자로서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들다. 하지만 우리의 바램은 늘 그러하다. 우리의 바램은 늘 과학과는 별도로 욕구로, 희망으로 존재하였다. 실체를 찾기 힘든, 손에 잡을 수 없는 신기루 같은 어떤 것이었다. 잡을 수 없기에 늘 잡으려하고 잡고 싶은 것인가 보다. 잡고 싶은 그림 하나, 이루고 싶은 실체 하나 만들어보자. 뚜렷한 목표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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