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진주성-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22 17:2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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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그래도 봄은 오고 있다

맹추위가 기승을 부린다. 마지막 추위일까. 얼어붙은 대동강 물도 풀린다는 우수도 엊그제 지났다. 낼모레면 2월도 끝나고 3월이다. 다음 주말이면 개구리도 잠을 깨는 경칩이다. 봄을 알리는 절기는 어김없이 다가오는데 봄이 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얼음장 깨어지는 소리가 들릴 것 같고 버들강아지의 풋내가 얼어붙은 땅을 녹여 흙내음도 날 것 같은데 기척이 없다.‘춘래불사춘’이라더니 봄이 오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엄마 손을 잡고 꽃다발을 안은 유치원생도 보이지 않고 왁자지껄한 초등학생의 졸업식 소식도 들려오지 않는다. 봄방학으로 아이들의 뛰노는 소리가 들려 올 것 같은데 그 어디에도 흔적이 없다. 곤줄박이의 꼬리 끝이 신바람 나게 쫑긋거리고 옴츠렸던 참새의 날갯짓도 오두방정을 떨어댈 때인데 웬일일까. 무엇이 잘 되고 있을까.

사위는 무거운 침묵의 잠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무겁기만 하다. 휴대전화도 골이 죽었다. 마지못해 안전안내문자가 왔다는 신호음만, 전화고 미동도 없다. 차 한 잔 하자는 말도 없고 점심을 같이 먹자는 말도 없다. 세상만사가 귀찮은 모양이다. 저렇게 맥 빠지게 드러눕지는 않았다. 070이든 모르는 번호든 전화 안 받고 뭘 하냐며 뒤집힌 풍뎅이처럼 덜덜거리거나 시도 때도 없이 ‘카톡, 카톡!’하고 깝죽거리더니 피죽 한 그릇도 못 얻어먹은 꼴을 하고 맥이 풀렸다. 혹시나 부재중이 있나 하고 열어봐도 흔적이 없다. 한다는 소리가 그 말이 그 말이고, 맨날 안부 문자만 주고받다가 그도 신물이 나서 내버려 두었더니 절해고도에 갇혀버린 듯 하루하루가 적막강산이다.

할 일 없이 앞 베란다로 갔다가 뒤 베란다로 갔다가 해봐도 아무것도 할 일이 없다. 구석구석을 훑어보아도 낯선 것이라곤 찾아볼 수 없고 손 안 대도 아는 것들이라 멋쩍게 서성거리며 창 밖을 보아도 어제나 그제나 한결같은 그림이라 볼일 없기는 목장승이다. 그냥 돌아서기가 민망해서 뻔히 알고 있는 집사람의 부식 저장고인 종이 상자를 열어보았다. 신문지를 말아 감은 무 서너 개와 비닐봉지에 든 대파하고 토란 몇 알에 나머지는 감자다.

그런데 이게 웬일이냐! 멈칫하고 자세히 보니까 감자에서 싹이 나오고 있다. 봄이 움트고 있는 것이었다. 가슴이 뛰었다. 쟁기 끄는 어미 소 앞에서 이랑을 타고 까불거리던 송아지가 뜀박질하던 사리긴 밭에, 싹이 돋은 감자를 쪼개서 쇠죽 끓인 아궁이의 재를 묻혀 심던, 그 봄날이 오고 있는 것이다. 얼어붙은 우리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할 봄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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