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인생은 블랙홀 같은가
아침을 열며-인생은 블랙홀 같은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2.24 17:2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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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
허만선/참전용사·국가유공자-인생은 블랙홀 같은가

장수시대라서 그런지 노익장을 과시하는 사람들이 TV나 신문 가십란에 종종 등장해 필자처럼 병약한 사람들의 부러움을 산다. 특히 103세의 김형석 교수님은 집필과 강연, 규칙적인 생활습관으로 잘 사는, 올바르게 사는 이생의 표상이라 할 수 있다. 누구나 그렇게 살고 싶지만 뜻대로, 마음먹은 대로 굴러가지 않는 게 대부분의 인생이다.

이런 말이 있잖은가? ‘살만 해 지니까 죽을병에 걸렸다’고! 또 호박은 늙으면 맛이나 좋지만 사람이 늙으면 무엇에 쓰나 하는 가락도 있다. 온갖 고초 겪으며 살다보니 청춘은 간 곳 없고 파삭 늙어 쭈그렁 망태요, 병으로 골골대는 젊은이가 비하하는 꼰대가 되어 있으니. 어쩌면 후회 없이 살다간 사람도 있겠다. 스스로 바보라 했던 김수환 추기경, 가난한 조국 부흥에 몸 바친 가나안 농군학교의 김용기 창시자, 막사이상의 장기려 박사, 울지마 톤즈의 이태석 신부, 무소유의 법정스님 같은 분들 말이다. 살신성인의 애국지사나 구국영웅들도 그렇고.

하지만 우리네 대다수는 지금의 코로나 물결에 휩쓸리는 자영업자들 울분의 외침처럼 시류에 떠밀려 살다가 간다. 어디서 왔다가 어떻게 살다가, 어디를 가는 목적의식도 없이. 한 다리 건너 전우의 아들이 은행 중견간부(지점장)에서 물러나 성업 중인 체인점을 인수했는데 처음 몇 달은 현상유지가 되는 듯 했으나 코로나의 쓰나미는 피할 수가 없었다. 경험도 없이 시작했다느니, 시장조사가 미흡했다느니, 가족 간 불화도 깊어지면서 40대 중년의 그 아들은 손을 털고 인력사무소를 기웃댄단다.

코로나 때문일까? 지난해 자살자가 1만2000여 명, 하루 40명 꼴이라 한다. 젊은이는 취업이나 불확실한 미래가 우울증을 부르고, 늙은이는 고독과 생활고로 빠이빠이 하고, 본인이나 측근의 비리로 자존심을 구긴 유명인(노무현, 노희찬, 대장동팀 등)도 고귀한 목숨을 헌신짝 버리듯 했다. 평택물류창고 화재나 광주건설현장 사고에서 보듯 사고사까지 보태면 인구 감소의 또 다른 요인이 아닐까?

악한 놈들이 잘도 살아가는 대한민국에서 자신의 뜻, 마음대로 산다는 건 불가능한 것일 게다. 필자의 인생은 어떨까? 천박스런 말이지만 엿 같았다고 비유해 본다. 전역 십 년 후부터 지금껏 40여 년을 투병으로 지새웠으니까! 누군가는 비웃을 것이다. 전쟁터에 갔다 왔어도 멀쩡하게 잘 사는 사람이 많은데 궁상을 떤다고. 어쩜 그 말이 맞다. 남 탓, 세상 탓은 못난 놈만 하니까.

이제는 인생길 석양, 영혼의 자유를 찾아 떠날 날이 멀잖은데 소소하나마 즐기는 낙이 있다. 국방 TV의 전쟁 영화와 대테러 작전을 수행하는 특수부 대원들의 활약상을 시청하는 것이다. 연출된 내용이지만 하늘, 땅, 바다의 극한 상황을 이겨내는 강인함과 스릴은 어느새 험산 정글을 헤매던 옛 기억을 되살아나게 한다. 손에 땀이 베고 심장이 전율하는 선과 악의 싸움, 나의 한 때가 그랬는데.

건강한 노동의 땀 한 방울 흘려보지 못 한 아쉬움만 남기고 다른 차원의 여행을 준비해야겠다. 일흔 여덟 길손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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