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항일투쟁 참여 숫자와 포상 내력
진주성-항일투쟁 참여 숫자와 포상 내력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3.09 20:1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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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쟁 참여 숫자와 포상 내력

의병 참여 30만 여명이었고 10만 명 이상은 살상, 투옥되었고 일제 기록에는 8만2천767명 참여해 순국자 5만7천21명이라 했으며 이들 대부분은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무명용사로 남았다.

3.1운동 참여자 50만 여명 이었고 2만 명 이상 살상, 투옥, 행불되었고 1929년 11월 3일부터 광주학생의거에 전국 194개 학교가 동참해 체포, 구금, 퇴학 된 학생 5만 4천 명 이상 이고 학생들 대부분이 지금까지 미 포상이다. 학적부 미비 또는 소실, 소각되어 명단조차 확인불가인 이들이 많다.

신간회, 근우회, 청소년회 활동으로 투옥, 퇴학자들이 3천 여 명 이상이다. 정부 포상 내력 즉 연도별 포상 현황을 보면 1949년 이승만 대통령, 이시영 부통령 2명이 건국훈장 대한민국장 수여로 시작했지만 계속 못하고 13년이 지난 군사정권 때부터 포상이 재개되었다. 1962년 204명을 포상하고 1963년 262명, 1968년 81명, 1970년 22명, 1976년 7명, 1977년 105명 포상, 1980년 35명, 1982년 19명, 1983년 4명, 1986년 7명, 1987년 2명, 1988년 1명, 1989년 12명이 포상되었고 1970년과 1976년 1988년에는 각각 1년간 1명씩 포상하기도 했고 1969년부터 1976년까지 8년간 한 명도 포상하지 않은 황당하고 기가 막히고 통탄할 일도 있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향토사학계에서 발굴해 포상상신을 시작하자 그 때 부터 정부가 나서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1990년부터 본격화되었고 651명을 대거 포상하게 되었다. 1990년 651명, 1991년 546명, 1992년 591명, 1993년 386명, 1994년 26명, 1995년 1442명, 1996년 273명, 1997년 125명, 1998년 158명, 1999년 170명, 2000년 157명, 2001년 111명, 2002년 208명, 2004년 149명, 2005년 569명, 2006년 525명, 2007년 349명, 2008년 427명, 2009년 367명, 2012년 318명, 2013년 311명, 2014년 341명, 2015년 510명, 2016년 312명, 2017년 269명, 2018년 355명, 2019년 647명, 2020년 580명, 2021년 656명, 2022년 2월 현재 17066명이 포상되었으나 미 포상자가 3배 이상 많은 6만 2천명이다. 감질나게 찔끔 포상하는 국가는 없다.

애국지사에 대하여 극심하게 차별하는 나라는 없다. 미국은 32개 주에서 손·자녀 우선채용하고 가산점 30%를 적용한다. 일본은 공무원, 교사 우선 채용과 20% 가산점을 주고 80% 비율로 채용한다. 프랑스는 450만 명을 취업 보장한다. 대만은 유공자 손·자녀는 정년연장 5년과 80%를 정규직으로 채용하고 호주, 캐나다, 프랑스, 독일 등도 정규직 우선채용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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