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새봄이 오는 길목
진주성-새봄이 오는 길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3.15 17:32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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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새봄이 오는 길목

매향이 창문 밖에다 새봄을 풀어놓았다. 흙냄새와 풀냄새가 매향에 섞여 야릇한 향기로 안섶으로 스며든다. 시절이 수상하여 오지랖에 빗장을 걸어 굳게 닫았던 가슴을 연다. 얼음장 밑에서 숨죽이고 웅크렸던 개울물이 카랑카랑한 제소리를 내며 버들강아지의 가지를 흔들어 절망에 몸 사리고 잠들어 버렸던 개구리들을 깨웠다.

설한풍에 얼어서 굳어버린 눈꺼풀이 녹으며 빛이 보이고 하늘이 보인다. 온갖 이명에 시달려 먹어버렸던 귀가 열리며 산새 들새가 재잘거리는 소리가 들리고 온갖 꽃망울이 터지는 소리가 함성으로 들린다. 양지쪽에는 새싹 돋는 소리가 들리고 음지에서도 얼어붙었던 땅은 등이 갈라지며 몸풀기를 한다. 못다 핀 동백꽃이 송이송이 떨어지던 날의 눈물 자국을 지우고 칼바람에 맞서며 새 송이를 피워내던 날의 환희를 기억해낸다. 깨어진 꿈의 조각들이 더는 서럽지 않으려고 다시 시작하려는 숨 고르기로 아픈 기억들을 털어내며 후회 없을 내일을 향해 이상의 깃대 끝에 새 깃발을 높이 걸었다.

몽당비는 봄볕이 한가득 내려앉을 마당을 말끔하게 쓸어놓고 손 때 묻은 호미는 화단에서 봄꽃 피울 준비에 바쁘고 녹이 슨 괭이도 새 씨앗을 뿌릴 이랑을 짓는다. 따돌림 받던 쭉정이도 보드라운 흙을 덮어 다독거렸고 말발굽에 짓밟힌 씨앗도 더는 비참해지지 말자며 양지쪽에 심었다. 가슴의 온기로 움튼 씨앗은 들끓는 열정으로 잎을 키워서 땀을 적시면 꽃으로 피어날 것을 믿고 있다.

이제는 솔기마다 찌든 때를 씻어내고 드넓은 광야를 바라보며 가슴을 헹궈야 할 봄이 왔다. 솔방울 속을 뒤적거리던 산새들도 날갯짓이 바쁘고 까치는 새 둥지를 지을 나뭇가지를 물고 치맛자락을 휘날리며 봄바람이 났다. 어둠과 맞섰던 햇닭이 홰를 치며 여명을 걷어내고 목청껏 새벽을 불러낸다. 눈보라에 부대껴 흔적을 감추었던 다람쥐도 바윗돌의 정수리에서 꼬리를 쫑긋거리며 신바람이 났다. 딱따구리 소리에 기가 죽어 소리 한 번 내지르지 못하던 곤줄박이는 새봄 소식을 전하느라고 건너편 산으로 바쁘게 날아가고 배를 곯았던 뱁새들이 매화꽃이 피었다고 덤불 속마다 소문내고 다니느라 날갯죽지가 뻐근하다.

천지를 모르는 송아지는 겁도 없이 허공을 향하여 뒷발질만 해대지만 바지런한 벌들은 매향을 나르느라 동분서주하고 오만에 등 돌리고 석벽에 굳어버린 돌부처가 새봄이 오는 길목을 향해 돌아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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