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Ⅱ)
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Ⅱ)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06 17:1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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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Ⅱ)

다음은 김삿갓이 남긴 일화 몇 가지를 소개한다. 일화1→금강산에 가서 저녁에 한 사찰(寺刹)에 들렀을 때 사찰에 있던 선비와 승려가 자기들끼리 비밀스럽게 이야기를 나누며 김삿갓을 우습게 여기고, 선비가 김삿갓을 우롱하기 위해 시구(詩句)로 우열을 청했다가 김삿갓의 해박한 글재주에 망신을 당한 일화다. 선비:자, 내가 먼저 운(韻)을 띄울 테니 어디 한번 답해 보시오. 김삿갓:좋습니다. 운을 띄워 보시오. 선비:타! 김삿갓:언문풍월이오? 선비:당연하지. 김삿갓:그거야 간단합니다.(속으로‘네놈이 날 우습게 보는 모양인데 어디 한번 맛 좀 봐라.’) 선비:그럼 해 보시오. 김삿갓:사면 기둥 붉게 타! 선비:또 타! 김삿갓:석양 행객 시장타! 선비:또 타! 김삿갓:네 절 인심 고약타. 운을 띄우자마자 바로 대답하는 김삿갓을 보고 선비와 승려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게다가 가면 갈수록 듣기 거북한 말이 튀어 나오니 운을 더 띄울 용기가 나지 않았다. 그리고 김삿갓은 "지옥 가기 딱 좋타."라고 대답하기 위해 선비가 '타'라고 한 번 더 띄우기를 기다리고 있자 결국 선비가 고개를 숙이고 말았다.

일화2→어느 날 길을 가다가 해가 저물어 서당에서 걸음을 멈추고는 하룻밤 자고가야겠다고 생각하고 서당 문을 열어 보았는데 선생은 얼굴도 보이지 않고 아이들만 몇 명 글을 읽고 있었다. 김삿갓이 중얼거렸다. 書堂乃早知(서당내조지) 房中皆尊物(방중개존물) 生徒諸未十(생도제미십) 先生來不謁(선생내불알) 이구나. 라고 하였는데 학생들이 보니 웬 거지같은 사람이 선생님 욕을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선생이 돌아왔다. 아이들이 선생에게 일렀다. “선생님 저 거지같은 사람이 선생님 욕을 하였어요.” 선생이 노하면서 꾸짖었다. “웬 사람인데 글공부하는 아이들한테 욕을 했단 말이요?” 김삿갓이 조금 전에 아이들한테 한 말을 써내려갔다. 우리말로 해석하면 ‘내 일찍이 서당인 줄은 알았지만 방안에는 모두 귀한 집 자제들 일세! 글 읽는 생도는 모두 10명도 못되는데 선생은 어디 갔는지 생도들을 돌보지 않는구나!’선생은 김삿갓이 범상한 인물이 아님을 알고 머리를 조아리고 인사를 하였다.

해석만 보면 그냥 점잖게 까는 것 같지만, 실제 이 문장의 음을 소리 내어 읽으면... 오늘날에 봐도 상당히 저속한 단어들을 사용했는데, 당시 19세기 조선의 언어생활과 이 시를 쓴 김삿갓의 박식함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물론 민중들의 대사에서 욕설이 난무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이와 같은 과격한 표현은 감정과 생각을 나타내는 수단으로써 그다지 드문 표현은 아니었다. 잘못하면 김삿갓에 대한 멍석말이가 한 판 벌어질 수 있는 상황이기도 한 망언일 수도 있었다. 더하여 이 시는 조선시대의 욕과 비속어(卑俗語)에 대한 귀중한 자료이기도 한데, 오늘날도 그렇지만 욕이나 비속어가 기록된 기록물이 거의 없기 때문에 과거의 비속어에 대해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제아무리 기록이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이라도 욕은 기록 못했으니...게다가 '좆물'을 '尊物(존물)'로 쓴 걸 보면 당시에도 음절의 끝소리 규칙(평폐쇄음화)과 비음화가 있어(좆물→존물)의 음운 변동이 일어났음을 알게 해 준다.

일화3→방랑 중 돈이 떨어진 김삿갓은 임시로 글을 가르쳐 돈을 벌려 광고문을 써 붙였는데, 자기에게 와서 배우라는 의미로… 自知(자지)면 晩知(만지)고 補知(보지)면 早知(조지)다:혼자서 알려 하면 늦게 알게 되고 도움 받아 알려 하면 빨리 알게 된다. 라는 내용이었다. 내용만 본다면 홍보용으로 적합한 내용이지만 한자의 음만 읽으면…,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다. 라는 저속한 섹스드립이 된다. 일화4→여성 거문고 연주자를 대놓고 성희롱하는 시(詩)도 지었다. 爾年十九齡(이년십구령):너의 나이 열아홉에/乃早知瑟琴(내조지슬금):일찍이도 거문고를 탈 줄 알고/速速拍高低(속속박고저):박자와 고저장단을 빨리도 알아서/勿難譜知音(물난보지음):어려운 악보와 음을 깨우쳤구나! 일화5→비 처녀 논쟁도 했다. 김삿갓 왈…毛深內闊(모심내활) 必過他人(필과타인):털이 깊고 속이 넓은 것을 보니/필시 딴 사람이 먼저 지나갔도다. 처녀도 보통이 아닌지라 다음 시로 응수했다. 처녀 왈…溪邊楊柳不雨長(계변양류불우장) 後園黃栗不蜂坼(후원황률불봉탁):개울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길게 자라고 뒷마당 알밤은 벌이 쏘지 않아도 벌어지네! 하하하 우습지만 김삿갓의 해박함에 고개가 숙여지는구나!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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