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만일
아침을 열며-만일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08 17:21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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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만일

우리는 종종 ‘그때 만일 그러지 않고 이랬다면’ 하고 상상을 해본다. 그러면 지금의 현실과는 완전히 다른 어떤 결과가 그려진다.

그런 가정은 제법 교육적인 효과가 있다. 그 가정이 반성의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이라는 R시인의 시집 제목도 그런 취지다. 영화 〈백 투 더 퓨처〉에도 실은 그런 내용이 결정적 소재로 활용된다. ‘만일 고등학생이었던 엄마 아빠가 댄스파티에서 키스하지 않았다면’ ‘만일 ‘병아리’라는 니들스의 놀림에 발끈해서 자동차 경주를 하지 않았다면’ ‘만일 클라라의 마차가 사고를 당하지 않았다면’ 그 이후의 전개가 완전히 달라졌을 거라는 걸 그 영화는 잘 보여준다. 마티는 태어나지도 못했을 것이고, 교통사고를 모면했을 것이고, 브라운 박사의 사랑은 시작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런 ‘만일’들이 우리들의 삶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아니 거의 매순간이 그렇다고 해도 과장이 아니다. 모든 인간의 모든 삶을 들여다보면 실제가 되지 못하고 그냥 가능성 속으로 사라진 그런 ‘만일’들이 부지기수다. 아마 다 합치면 수억 수조도 넘을 것이다. 현실이 될 수도 있었을, 그러나 선택되지 못하고 사라진 ‘완전히 다른 모습의 세계’가 그 어딘가에 따로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세계가 우리의 문학적-철학적 상상력을 자극하기도 한다. 예컨대 그때 거기서 이 사람이 아니라 다른 사람을 만났다면, 그때 이 학교가 아니라 다른 학교를 갔다면, 그때 이 회사가 아닌 다른 회사에 들어갔다면, 내가 이 나라가 아닌 다른 나라에 태어났다면 , 그 이후의 삶은 지금과는 완전히 달랐을 것이다. ‘만남’이라는 건 특히 그렇다.

이것은 내가 여러 차례 강조했던 저 ‘결여가정’이라는 철학적 방법론의 한 확장 버전이다. ‘변경가정’이라 불러도 좋다. ‘다른 선택’을 가정해보는 것이다. 이것을 국가 내지 역사에 적용해보는 것도 재미있다. 만일 BC108년의 조한(朝漢)전쟁에서 고조선이 한무제에게 승리했다면, 만일 신라가 아니라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했다면, 만일 고원(高元) 연합군이 왜를 정벌했다면, 만일 세종이 아닌 양녕이 즉위했다면, 만일 선조가 김성일의 말 대신 황윤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면, 만일 원균이 아니라 이순신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만일 다산이 영상의 자리에 올랐다면, 만일 대한제국이 군비를 강화하고 미국과 동맹을 맺었다면, 청일전쟁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패했다면, 만일 미소(美蘇)가 38선을 긋지 않았다면, 만일 중공군이 우리 남북전쟁에 참전하지 않았다면, 만일 김재규의 10.26이 없었다면, 만일 전두환의 12.12가 없었다면, ‘그 이후’가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완전히 달랐을 거라는 건 두말 할 필요도 없다.

이런 변경가정은 그 자체로 흥미로운 그리고 아무 부담 없는 지적 놀이가 될 수도 있지만, 그게 현재 내지 현실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왜냐하면 현재의 선택이 완전히 다른 미래를 결정하는 바로 그 갈림길 앞에 있기 때문이다. 현재의 선택은 우리가, 특히 우리나라가 A로 갈 것이냐 B로 갈 것이냐를 결정한다. A와 B, 천양지차로 다를 수도 있는 그 결과에 대해서는 현재의 우리가 전적으로 책임을 져야 한다. 우리가 어떤 선택을 하는 순간 다른 모든 가능성들은 현실이 되지 못하고 저 ‘만일의 세계’로 사라지는 것이다.
하여 나는 ‘현재’를 함께하고 있는 동시대 한국인들에게 물어본다. 당신은 어떤 미래를 선택할 것인가. 남북도 모자라 좌우로 두 쪽 난 이 걱정스런 현실을 그대로 지속시킬 것인가? ‘만일’ 당신이 대통령이라면 우선 모든 수단을 총동원해 이 좌우경계부터 허물 것을 부탁한다. 그런 다음 ‘세계 최고의 질적인 고급국가’라는 표지판이 있는 길로 한국이라는 자동차의 핸들을 돌리고 엑셀을 밟아줄 것을 부탁한다. 덩치는 작지만 ‘질적으로’ 승부를 걸면 저 중국과 일본, 그리고 유럽과 미국보다 더 고급인 세계 최고의 국가를 건설하는 것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나는 이미 여러 차례 호소해왔다. 50년 후 100년 후, 이것이 ‘만일 그때 2022년에’ 라는 후회의 세계로 사라지지 않도록 당신이 이 시대의 지성을 들쑤셔놓아 주기를 부탁한다. 나는 기다리고 있다. 참으로 오래 된 기다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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