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하동지역 국채보상운동
진주성-하동지역 국채보상운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15 17:2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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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하동지역 국채보상운동

국채보상운동은 1907년 2월 초순 부산 동래지역 상인들이 첫 안건을 내고 대구 광문사에서 선도적으로 전개한 항일투쟁이다. 하동군 횡천면에 사는 이종란은 의연금 10원을 기부하게 되는데 현재 쌀 3가마 값이니 일반인들은 10전~20전 내는 형편에 엄청난 금액이다.

이종란은 하동청년회관을 건립할 때 발기인이었고 향리에 야학교를 건립할 때 2백 원을 기부해 문맹퇴치에 앞장 선 분이다. 남해군 노량리 소재 충렬사(충무공 이순신의 가묘)를 중건할 때 후원회원으로 기부금을 냈다. 하동군 하동읍에서 북서쪽 5리 화심리에 사는 의령 여씨 40여 명도 동참했다. 하동군 전역에서 3대 부호에 드는 여종엽, 여경엽 형제도 보상운동에 동참하게 되는데 여종엽은 참봉,통훈대부로 81원을 기부하였고 하동청년회관 건립할 때 으뜸으로 기부하고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할 때 2천원을 기부했다. 또 남해 이순신 장군의 충렬사를 중건할 때 후원회원으로 거액을 기부했다.

하동군 옥종면 안계리 주민들도 보상금 운동에 앞장서게 되는데 하재도, 하일노 선생 등이다.
하재도 선생은 아들 하우선, 손자 하태구, 증손자 하유집 인데 증손까지 3대 문집이 전해 지는 유학자 집안이다. 하일노 선생은 하동군 옥종,청암,단성 일원 5천여 명을 모아 시위를 전개한 항일투사로 93년 대통령 표창이 추서되었다. 하동의 연일 정씨, 진주 정씨도 보상운동을 전개하게 되는데 100원을 의연하고 또 52원을 의연한 참봉 정환중은 3대 충신 집안이다.

하동군 양보면 용궁 김씨 김홍권 선생은 뒤에 유경환과 함께 일본 유학생이었고 상해 임시정부 의정원 의원과 재무위원 이었고 친구 김범부가 양보에 공적비를 세워 주었다. 하동군 고전면 신월리 염종환, 염정일, 염태섭 등도 보상운동에 동참하였고 염태섭은 효행으로 동몽교관이 되고 정려가 세워져 충효가문이다.

옥종면 손경인은 의병장 손기혁의 부친으로 1992년에 서부경남 최고 훈장인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옥종면 함안 조씨들 20여 명도 보상운동에 동참하고 옥종면 함평 모씨들도 보상운동에 동참하게 되는데 효행 정문 모순 선생 정려는 2015년 10월 경남문화재 595호로 지정되도록 필자가 15년 만에 성사시켰다. 양보면 정두우, 김두성, 이종린 등이 각 2원을 의연하고 송석희, 정기연, 김현국, 강원희, 장기완 등도 각 1원을 의연해 애국심을 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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