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Ⅳ)
칼럼-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Ⅳ)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20 17:05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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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울분과 회한의 방랑시인 김삿갓 회고(Ⅳ)

일화13→회갑축시 披坐老人非人間(피좌노인비인간) 疑是天上降神仙(의시천상강신선) 膝下七子皆盜賊(슬하칠자개도적) 偸得天桃獻壽宴(투득천도헌수연):저기 앉은 늙은이는 사람이 아니니/마치 하늘에서 내려 온 신선 같구나!/슬하 일곱 아들 모두 도둑놈이니/천도복숭아를 훔쳐다 잔치를 빛내는구나! 한 시골 노인의 회갑연에서 지은 시(詩)이다. 말석에서 푸대접을 받자 즉석으로 축시를 짓는다 하여 써내려갔다. 첫 소절을 보고 그 뜻을 알아차린 가족들과 하객들이 화가 치밀어 몰매를 쳐서 쫓아내려 하자 두 번째 소절로 그들을 감탄시킨다. 세 번째 소절을 써내려간 후 좌중이 눈치만 보고 있자 맛 좋은 술을 청한 후 시를 마무리하여 후한 대접을 받았다고 한다. 김삿갓의 시에 감탄한 가족들과 노인은 여러 날 동안 그를 대접했지만 그가 떠나기로 결심하자 더 있어달라고 했지만 기어이 삿갓이 떠나게 되자 여비를 두둑하게 주며 삿갓과의 이별을 아쉬워했다.

일화14→시가 아닌 말장난 중에도 이런 것도 있다. 어느 머슴이 헐레벌떡 뛰어 가길래 김삿갓이 잡고 "어딜 그리 급하게 가냐?"고 하니 "사람이 죽어 부고(訃告)를 쓰러 간다."고 했다. 김삿갓이 "내가 글을 알고 있으니 써주겠다."고 했는데, 쓴 것은 유유화화(柳柳花花). 글을 모르는 머슴은 "고맙다"고 하고 그것을 받아갔다. 그런데 국어로 그대로 직역하면 '버들버들꽃꽃', 그러니깐 버들버들 떨다가 꼿꼿해졌다. 즉, 생판 모르는 남의 죽음을 희화화한 것이 된다.

김삿갓은 유유자적 이리저리 방황하다가 10년 단위로 집에 들어와서 자신의 아내와 아들과 딸들을 보고 또 나가곤 했다. 32살 때인 1838년 음력 9월 21일에 아내가 죽자 집에 돌아와 아내의 장례를 치르고 얼마 뒤에 경주 최씨 최흥주(崔興柱)의 딸과 다시 결혼했다. 기록에 의하면, 그의 아들인 차남 김익균이 "그만 여행하고 집에 돌아오라"는 편지를 수십 통이나 베끼어 아버지가 갈 만한 마을마다 이를 부탁하고 맡긴 모양이다. 그런 편지를 아무 탈 없이 받은걸 감안하면 그의 엄청난 명망이 짐작된다. 그리고 아들과 집안사람들이 몇 번 귀향을 권하였으나, 그 때마다 심부름을 보내는 둥 따돌리고는 도망쳤단다. 그렇게 살다가 김병연은 마흔 줄에 들어 떠돌아다니는 생활이 힘에 부친다는 이유로 집에 틀어박히려고 왔는데, 가정의 일을 소홀히 하여 가족들로부터 냉대 받는 것이 다시 그를 바깥에서의 생활로 발길을 돌리게 했다. 그는 말년에 접어들어 건강이 갈수록 나빠졌고 외지인 전라도 동복현(현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서 그와 알고 지내던 지인 안 초시라는 사람의 집을 방문했을 때 쓰러졌고, 안 초시의 사랑방에서 누워 치료를 받다가 숨져 방랑의 종지부를 찍었다. 이때 그의 나이 56세였다. 죽기 전에 그가 곁에 있던 안 초시에게 남긴 마지막 말이 위에 언급된 유언이다. 묘지는 고향인 영월군 김삿갓면 와석리에 있다. 그래도 사후에는 워낙 유명해져서 임금도 알고 있을 정도의 유명인사가 되었다. 김삿갓의 손자인 김영진이란 사람이 절에서 승려로 있었는데, 절에 다니던 궁녀를 통해 그걸 알게 된 임금이 일부러 궁궐로 불러서 김익순의 죄를 사면해주고 환속을 시켜 관직을 내려주었다. 이후 김영진은 망국 후에 양조장을 차려 큰 부자가 되었으나 자신이 번 돈을 가난한 이들을 위해 쓰다가 정작 본인이 가난해졌다고 한다. 그래도 덕분에 김부자 송덕비가 세워 졌다. 또 당시에는 거지들이 김삿갓 흉내를 내면서 구걸하는 일과 그의 흉내를 내며 삿갓을 팔았던 삿갓팔이들도 많았다고 한다.

문중에 김삿갓이 남긴 시와 글이 있었지만 6·25동란을 거치는 중 훼손되어 남은 유물이 거의 없어 볼 것이 별로 없다. 비슷한 인물로는 해학(諧謔)으로 살다간 정만서, 실존 인물 봉이 김선달, 시대가 겹치는 인물로는 고산자 김정호가 있다. 문학계에서는 김삿갓이 문학적·예술적으로 뛰어난 성취를 남기었다기보다는 재치 있는 작품들을 남겼다고 평해진다. 흔적이 남아있는 곳은 강원도 영월군에는 김삿갓면이라는 행정구역명이 있는데 2009년부터 하동면에서 변경된 것이다. 오지라 피서 목적의 펜션 등이 많은데 상호에 김삿갓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는 점포가 많다. 김삿갓 펜션·김삿갓 마트 영월에는 자매품으로 한반도면과 무릉도원면이 있는데 김삿갓면과 같은 공식 행정구역명이다. 전라남도 화순군 동복면에는 도로명주소로 김삿갓로가 있으며 김삿갓이 숨을 거둔 장소다. 매력적 인물이었기에 되새겨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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