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산청지역 국채보상운동
진주성-산청지역 국채보상운동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6.22 17:1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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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산청지역 국채보상운동

산청군 출신들도 남녀노소, 종교불문,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거대한 개미군단을 형성해 보상운동을 전개하게 된다. 곽면우 선생이 선도적으로 앞장 서게 되는데 의병의 본거지 진주시 낙육학교(현 중앙요양병원)에 유림을 대표하는 사무실이 설치되었고 너도 나도 의연금을 모아 기부금을 냈다.

산청군 원당면 박규호, 박우준 등이 동참하게 되는데 박규호 선생은 뒤에 파리장서에 서명하고 95년에 건국 포장이 추서되었고 박우준 선생은 옥고 기록도 있지만 미포상이다.

단성면 이진훈, 이진보,이상규, 이한동 등이 동참하게 된다. 이진훈 선생은 1894년 진사시에 입격하고 단성보통학교 확장 기금 4백원을 기부한 분이다. 이진보 선생은 궁내부 주사를 지내고 1921년 단성보통학교 확장기금 100원을 기부하고 진주고, 진주여고 설립 당시 2천 원을 기부하신 분이다. 이한동 선생은 보상운동에 적극 동참하여 단성보통학교 총무, 단성보통학교 학부형회 임원이었다. 부산에 직계손이 산다. 이상호 선생은 합천 이씨로 김인섭의 문인, <우산유고>가 있다. 이상규 선생은 고성군 출신이지만 산청군으로 이주해 살면서 보상운동을 전개했다. 허전 선생의 문인이다. 의금부 도사에 임명되었으나 나가지 않았다. 유고집이 있다.

이병원 선생은 호가 소당, 합천 이씨, 면우 선생의 문인이다. 산청군 심장면에 사는 남명 조식 선생의 직계 손들도 보상 운동에 동참하게 된다. 조향순, 조용삼, 조유순, 조병운,조훈상 등이고 조용상 선생은 호가 현재이고 원순의 아들이고 계남 최숙민과 곽면우 선생의 문인이다. 산청군 금서면 특리에 사는 온상교 선생도 동참하게 되는데 동아일보 1923년 9월 8일자 흉작으로 동민들이 극히 곤경에 처하자 정조 7석을 동네 극빈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라고 보도되었다. 진주 상평동 온재윤 전 교장이 직계 후손이다. 산청군과 옥종면에 토지를 소유한 최인환은 보상금 20원을 의연하고 1909년 지리산 의병장 유명국, 이만용에게 황소, 벼 수십 석을 기부한 기록도 있다. 김은호 선생은 산청군 초곡면 출신으로 보상운동에 동참하였고 명륜당 발기인, 도유사로 활동하였고 산청청년회 평의원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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