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조금은 둔감하게 살자
칼럼-조금은 둔감하게 살자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04 17:19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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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조금은 둔감하게 살자

정신적으로 건강하다는 말의 의미는 무엇일까? 이는 외부에서 들어오는 자극이 열 개라면, 그 중 내게 필요한 서너 개만 받아들이고 나머지는 내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뜻이다. 즉,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를 어떻게 소화하느냐의 문제인 것이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나의 에너지를 내가 원하는 곳에, 내가 원하는 시점에서 사용할 수 있다. 마음속에 불필요한 자극, 미처 아물지 못한 상처, 좌절과 실패에 따른 갈등과 후회의 감정이 뒤엉켜 있는 한, 우리는 그 속박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그럴 때 ‘둔감한 마음’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감정을 가지치기할 수 있다면 삶의 많은 부분이 달라 질 수 있다.

특히 일상에 곧바로 영향을 미치는 가장 중요한 오감(五感), 즉 눈(시각), 귀(청각), 코(후각), 혀(미각), 피부(촉각)가 지나치게 예민하면 득이 될 게 없다.

눈이 너무 좋으면 여러 가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보통 사람은 1.0에서 1.2정도의 시력만 갖춰도 세상을 보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다. 오히려 1.5를 넘어 2.0가까이 되면 불편한 점이 생긴다. 일반적으로 인류 사회의 모든 시스템은 1.0에서 1.2정도의 시력이면 충분히 생활 할 수 있게 설계되어 있다. 시력이 1.5가 넘으면 사물이 지나치게 잘 보여서 눈이 금세 피로해진다. 시력이 나쁜 사람은 안경이나 콘택트렌즈, 수술 등을 통해 보완할 수 있지만, 시력이 좋은 사람을 위한 안경은 따로 없다. 시력이 너무 좋아서 자주 피로를 느껴도 교정할 방법이 없다.

청력이 너무 좋아도 문제이다. 다른 사람이 듣지 못하는 소리까지 듣는 사람은 집중력이 쉽게 흐트러지고, 늘 신경이 곤두서게 된다. 심각한 경우 환청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소리에 지나치게 예민하면 피로를 쉽게 느끼게 된다. 소리를 잘 듣지 못하면 보청기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소리가 지나치게 잘 들리는 사람이 사용할 수 있는 기구는 귀마개 정도뿐이다.

후각도 적당히 구별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너무 민감하면 오히려 고달픈 일이 많이 일어난다. M이라는 여성은 후각이 매우 예민해서 타인의 고유한 냄새를 기억해 사람을 구분할 수 있을 정도였다. 누군가 뒤에서 다가오면 “누구누구 시죠?”하고 사람을 알아맞혔다. 한번은 남편의 옷에 밴 흐릿한 여성용 향수 냄새를 단박에 알아채서 집안이 발칵 뒤집힌 일도 있었다고 한다. 다행히 오해였다는 사실이 밝혀져 별 탈 없이 마무리되었다고 한다. 이 여성은 음식 냄새에도 민감해서 음식점이 밀집한 거리를 걸을 때면 간판이 보이기도 전에 “요 앞에 이탈리안 레스토랑이 있네요! 그 뒤에는 중국집이 있어요!”이 여성의 후각은 그야말로 경찰견에 버금갈 정도였다. 예민한 후각 때문에 편식이 심하여 체력이 상당히 약했다고 한다. 반면 C라는 사람은 둔감한 후각 덕택에 향신료가 들어간 중국요리든, 베트남 요리든 가리지 않고 잘 먹어 건강한 삶을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예민한 미각은 요리사에게 꼭 필요한 자질이다. 세상을 살다 보면 입맛이 예민한 것보다는 약간 둔감한 편이 생활하기 편하기도 할 때가 있다. 즉 입맛이 까다로운 사람보다는 아무거나 잘 먹는 사람을 다들 편하게 생각하게 되며 그런 사람이 몸이 건강한 편이다.

촉각이 민감하면 살아가는 데 큰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예를 들어 척수의 중추신경이나 거기에서 뻗어 나온 말초신경 등에 이상이 생기면 손가락이나 연필로 건드려도 아무런 느낌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사람은 뜨거운 물이 닿아도 뜨겁다고 느끼지 못한다. 반대로 살짝만 닿아도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괴로워하는 사람도 있다. 한여름에 잠깐만 햇볕을 쐐도 금세 피부가 타서 물집이 생기고 벗겨지는 사람, 벌레에 살짝만 물려도 못 견딜 만큼 가렵고 조금만 긁어도 붉게 부풀어 오르는 사람은 분명 과민반응이다. 반면에 믿기지 않을 정도로 피부가 둔감한 사람도 있다. 즉 어떤 사람은 모기에 물렸는데도 별 반응이 없는 사람이 있다. 앞에서 살펴본 오감뿐만 아니라 관절이나 근육이 민감한 경우도 있다. K라는 사람은 날씨의 변화를 미리 감지하는 대단한 능력을 가졌다. 하늘이 맑아서 “오늘은 날씨가 참 좋네요”라고 말하면 “아니요 곧 구름이 몰려오면서 비가 내릴 거예요”하고는 기상청 예보처럼 답하곤 했다. K는 류머티즘을 앓아서 저기압이 다가오면 관절이 쿡쿡 쑤시기 시작한다고 했다. 조금은 둔감하게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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