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 미제라블
레 미제라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13.01.15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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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봉진 수필문우회 회장

갑자기 주위에 온통 레 미제라블 이야기가 넘쳐 나고 있다. 지난해 12월19일 대통령 선거일에 개봉된 뮤지컬영화 '레 미제라블'이 크게 히트를 하면서 많은 관객을 끌어 모으고 있기 때문이다. 때 맞추어 출간된 몇 출판사의 소설 레 미제라블도 덩달아 불티나게 팔리고, 작년 11월 용인에서 시작되어 지금 대구에서 공연 중인 뮤지컬 레미제라블도 앞으로 부산을 거쳐 4월 서울 공연에 이르도록 많은 관객을 끌어 모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이 뮤지컬은 1985년 런던 초연 이후 27년 동안 공식 라이선스를 받은 한국어 공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왔었다. 세계 4대 뮤지컬 가운데 하나인 이 작품은 가장 오랜 기간 성공적으로 공연이 되고 있으며, 지금까지 42개국에서 총 6000만에 이르는 관객을 동원했다고 한다.

소설 《레 미제라블》이 우리나라 말로 소개된 것은 비교적 빠른 편이었다. 일제 강점기인 1914년 최남선에 의하여 《너 참 불상타》라는 이름으로 대략의 줄거리가 잡지 《청춘》에 소개되었고, 전편이 소개된 것은 1918년에서 1919년에 걸쳐 일간지 《매일신보》에 초역(抄譯)이긴 하나 《애사(哀史)》란 이름으로 민태원이 번역한 글이 연재된 것이 처음이었다.

광복 후는 어린이들에게 중점적으로 소개되었다. 을유문화사에 거점을 둔 아동문화협의회가 1946년 《장 발장》이란 단권 아동극화 책을 냈다.
우리말로 《레 미제라블》 완역판이 나온 것은 1962년 을유문화사 세계문학전집 중의 하나로 정기수의 번역본이 간행되었을 때다.

빅토르 위고는 “법률과 관습이 있기 때문에 사회적인 처벌이 생기고, 그것 때문에 문명 속에 인공적인 지옥이 생겨나, 신이 베풀어 주어야 할 숙명이 인간이 만든 운명에 의하여 꼬여버린다”고 보았다. 그는 바로 그러한 것들이 인간이 인간에 대해서 행하는 악이라는 것을 이 소설을 통해서 고발하고, 이러한 악에 대항해서 양심을 자각하고 성장시켜가는 장 발장이라는 인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인간성에 대한 한없는 낙관적인 신뢰를 표명했다.

장 발장과 닮았다는 이유만으로 거주지 신고를 하지 않은 죄로 붙잡혀 법정에 서서 재판을 받고 있는 불운한 자를 구하기 위해, 장 발장이 자기를 끝까지 숨길 수 있는 절호의 기회와 그동안 본명을 감추고 쌓아 올린 지위와 명성을 버리고, 먼 길을 달려가 자수를 하기까지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간 폭풍 같은 고뇌, 코제트에 대한 부성애로 마리우스를 질투하면서도 빈사상태에 빠진 그를 헌신적으로 구출할 때 느낀 심리적 갈등 같은 것은 위고가 소설 속에서 가장 진지하게 묘사하고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신세계에 대한 표현은 모든 것을 노래로만 일관하는 뮤지컬 영화에서는 호소력이 약하다.

장 발장이 자기 삶의 마지막 보람이라고 생각하는 코제트를 지키느냐 마리우스에게 넘겨주느냐 하는 심리적 기로에 서서 번민하는 상황을 극적으로 표현하기 위해 설정된 무대장치의 하나인 1832년 6월 폭동 때의 바리케이드와 〈민중의 노래〉가 이 영화에서는 모든 것을 압도해 버린다.

위고는 장 발장을 핍박 받는 민중의 대표로 그렸다. 그러나 총을 들고 싸우는 혁명의 전사로는 그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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