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문화행위의 두 장면
아침을 열며-문화행위의 두 장면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13 16:5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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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문화행위의 두 장면

2022년 7월, 여름방학이라 특별한 일도 없어 ‘컴’ 앞에 앉아 이것저것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특별한 볼거리도 없어 결국은 늘 하던 절차의 하나로 유튜브를 여기저기 헤집었다. 아마도 AI의 수작일 것이다. ‘옛날가요’를 잠깐 들었던 전력을 놓치지 않고 관련 영상들을 좌르르 띄워주는데 그중 최희준의 ‘하숙생’이 눈에 띄어 모처럼 다시 들어보았다. “인생은 나그네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다분히 철학적인 가사도 좋지만 구성진 그의 저음이 아련한 그 옛날로 나의 의식을 데려다준다.

1964년 7월, 국민학교(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그때는 집 앞 거리에 커다란 들마루를 펼쳐놓고 온 식구가 옹기종기 앉거나 드러누워 라디오 연속극을 들었다. KBS 라디오 연속극 ‘하숙생’의 인기는 대단했다. 최희준의 그 노래는 그 연속극의 주제가였다. 화학도인 대학생, 미스코리아 지망의 여학생, 대학에서 불이 나고, 남자가 여자를 구하고, 남자는 화상을 입고, 여자는 결국 그 남자를 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 하고 지금 생각하면 참 상투적인 스토리지만, 당시로서는 먼 미래의 한 토막을 보여주는 미지의 세계, 대학생이라는 어른의 세계였다. 그 후속작이었던 ‘안델마트의 불고기집’도 꽤나 인기가 높았다. 가난하지만 착한 청년이 온갖 고생 끝에 스위스의 안델마트에 한국식 불고기집을 차려 여러 시행착오를 겪지만 어머니의 솜씨를 비결삼아 엄청난 인기를 끌고 돈을 벌고 늙으신 한국의 노모를 모셔 구경도 시켜드리고 효도를 하고 대충 그런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지금까지도 성공한 그 청년과 노모의 기쁨이 어렴풋이 기억의 한 자락에 촉촉한 윤기로 남아 있다.

거의 60년 전. 그 연속극 청취는 밤10시쯤이면 우르르 ‘극장’에서 쏟아져 나오던 영화 관람의 발걸음과 더불어 당시의 삶을 나름 아름답게 수놓았던 우리네의 소박한 문화행위였다.

1964년과 2022년, 그 사이에 세상은 엄청나게 변했다. 상전벽해니 천지개벽이니 하는 말로도 그 변화를 제대로 형용하기에는 부족할지 모르겠다.

1960년대 당시는 ‘좋은 것’이 무척이나 드물었고, 2020년대 현재는 ‘좋은 것’이 너무나 흔하게 널려 있다. 인터넷의 전파를 따라가면 세상의 거의 모든 것이 내 손안에 있고 내 눈앞에 있다. 너무나 흔해 좋은 것이 좋은 줄도 잘 모를 지경이다. 양적으로도 질적으로도 저 60년대와는 비교 자체가 무의미할 정도다. 이 ‘차이’에 대해 할 말이 태산 같지만 제대로 입을 열려면 아마 책 몇 권은 족히 필요할 것이다.

딱 한 가지만 짚어보기로 하자. 우리들의 삶에서 ‘문화’라는 것의 위상이 완전히 달라졌다는 것이다. 당신의 최희준씨는 그 구성진 저음도 화제였지만, 동시에 ‘S대 출신’이라는 것도 큰 화제였다. 노래/가수는 그런 엘리트와는 무관한 소위 ‘딴따라’로 비하되었다. 대중예술인들이 더러 정계에 들어간 것은 어쩌면 그런 부분을 상쇄하기 위한 인간적 노력의 일환이었을 수도 있다. 그것이 지금은 어떤가. 얼마 전 송해 씨가 별세했을 때, 그는 ‘선생’으로서 온 국민의 애도대상이었다. 그것이 하나의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 윤여정 ‘선생’은 더 나아가 이제 세계적인 ‘별’로서 추앙된다. 그 언저리에 지금 ‘한류’라 불리는 하나의 ‘세계’가 있다. 노래, 춤, 연기... 그 ‘딴따라’의 세계가 지금 전 인류의 주목과 칭송을 받고 있다. 그 세계의 하늘에서 반짝이고 있는 별들은 지금 어쩌면 실제의 밤하늘에서 빛나는 별들보다 더 많을지도 모르겠다. BTS나 싸이는 물론 윤여정, 송강호, 아이유, 봉준호, 황동혁, 이정재 한도 끝도 없다. 아니, BTS는 별이라기보다 거의 태양일까?

엄청난 수준이다. 우리는 이들에게 제대로 박수쳐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저 1960년대를 잊지 말아야 한다. 어제가 없는 오늘은 없다. 어제의 그들이 오늘의 저들을 만들어냈다. 신영균, 신성일, 김지미, 문희, 윤정희, 남정임, 이미자, 패티김, 배호, 나훈아, 조용필...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1970년대의 저 윤복희, 양희은, 박인희, 송창식, 윤형주, 김민기 ... 등등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1980년대의 이선희, 김광석...도. 그 ...[점점점] 속에 생략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별들이 있다. 그것이 지금도 유튜브 안에 다 있다. 참으로 기막힌 세상이 아닐 수 없다. 박수를 치기엔 나의 손바닥 두개가 너무 모자란다. 천수관음이라도 모셔 와야 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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