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선현의 명시(名詩)
진주성-선현의 명시(名詩)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7.21 16:58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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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선현의 명시(名詩)

일찍이 서산대사는 ‘눈을 밟으며 들길을 갈 제, 행여 어지러이 걷지 말라. 오늘 남긴 내 발자국은, 마침내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라고 경계했다.

앞서가는 사람의 일거수 일투족은 뒤에 오는 사람이 따라 하기 쉬우니, 심히 조심하라는 명언이다. 더구나 학교의 선생님이나 모든 조직의 지도자는 언행에 각별히 유의해야 할 말이다.

그러기에 선현(先賢)들이 남긴 명언명시(名言名詩)는 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삶의 지침이 되고 교훈이 되는 것이다.

신라 말기의 고운 최치원(857〜?)선생은 이름난 문신이요 유학자이며 문장가였다. 최승우 최언위와 함께 문장의 대가로써 신라3최(新羅3崔)라고 세인들이 일컬었다. 선생은 12세에 당나라에 유학하여 18세 장원급제를 하여 요직에 있다가 국내로 돌아와서는 외직을 자청하여 함양(천령)태수 등을 지냈다.

진성여왕(887-897) 재임 중에 천령태수였던 고운선생은 마을과 농경지를 보호하려고 함양의 중앙을 흐르고 있는 위천강이 홍수피해가 빈번하여, 둑을 쌓고 둑 옆에 나무를 심어 오늘날의 상림을 조성하였다. 만년에는 하동 쌍계사에서 진감국사비명을 짓고 합천의 청량사, 가야산 해인사에 기거하기도 하였으며 성균관과 전국 향교에 배향되어 있다. 이에 선생이 남긴 명시를 되새겨 보고자 한다.

‘범해(泛海)’ ‘돛달아 바다에 배 띄우니 긴 바람 만리에 나아가네. 뗏목 탔던 한나라 사신 생각나고, 불사약 찾던 진나라 아이들도 생각나네. 해와 달은 허공 밖에 있고, 하늘과 땅은 태극 중에 있네. 봉래산이 지척에 보이나니 또 신선을 찾겠네’

‘홀로 가는 구름’ 에서는 ‘여보게 자네, 품안에 자식이오, 내외(內外)도 이부자리 안에 내외지. 야무지게 산들 뾰족 할 거 없고, 덤덤하게 살아도 밑질 거 없다. 속을 줄도 알고, 질 줄도 알자. 주머니 든든하면 술 한 잔 받아주게, 나도 돈 있으면 자네 술 사줌세. 거물거물 서산에 해 걸리면, 지고 갈 건가, 안고 갈 건가,’

해인사 입구에서 짚고 다니던 지팡이를 꽂아놓고 “이 나무가 죽으면 내가 죽은 줄 알라.”라고 하며 홀연히 신선이 되어 떠나셨다는 고운 최치원 선생. 전설 같은 이야기에 그 나무는 아직도 싱싱하다는데, 선생이 남긴 명시는 세인들의 입에 널리 회자(回刺)되고 있다.

물거품 같은 명예와 권세에 매달려 죽을힘을 쏟는 현대인들에게 선생이 옆에 계셨다면 주머니 열어 술 한 잔 사 주실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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