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항일투사 2만 명을 살려 주세요
진주성-항일투사 2만 명을 살려 주세요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8.10 17:07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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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항일투사 2만 명을 살려 주세요

8월 15일 광복절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없다. 2022년 현재까지 항일운동으로 정부포상이 추서된 항일투사는 약 1만 6천여 명이다.

그러나 옥중 사망, 행불, 전사자, 옥고, 3년 이상 활동한 이들이 모두 기록(재판 원문. 신문 자료)에 2만 명이 넘었지만 지금까지 미 포상되신 분들이 부지기수다.

임진왜란이 끝난 서기 4년 만인 1604년에 1등 공신, 2등 공신, 3등 공신을 가리고 3등 공신이라도 2천 여평 이상을 땅을 하사받고 내구마 한필, 종복 4~8명을 받아 대대로 호의호식하며 지내게 했다.

광복된 지 77주년이 되었으나 목숨 건 투쟁자들이 미 포상자로 남아 있으니 이렇게 많으니 이해가 되지 않는다.

광주 민주화운동은 거의 포상이 이루어지고 여순반란 사건도 명예회복이 되었고 제주 4,3사건도 명예회복이 되고 국립화 되었다.

가장 오래 된 항일독립운동만 폄하되고 명예회복이 안 되고 포상이 안 되고 있으니 이상 요상한 일이 아닌가.

이종찬 전 국회의원께서는 대통령과 40년 이상 지인이라면 항일투사 포상문제를 건의해 주시기 호소 탄원합니다.

김영삼 대통령께서 역사 바로 세우기를 통해 1천4백여 명을 대거 포상케 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역사 바로 세우기를 전개해 주기 바란다.

1949년 이승만, 이시영 대통령 부통령이 건국공로 건국훈장을 받은 것이 시초가 되었으나 13년이 지나 1962년 1963년에 204명, 262명을 포상한 것이 대거 포상의 길을 열었다.

1969년부터 1976년 까지 7년간 단 2명만 포상했으니 백번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는다. 1983년 4명, 1987년 2명, 1988년에 1명을 포상하고 1989년에 12명을 포상하기도 했다. 이해가 되는 일인가.

향토사학자들이 적극 나서자 비로소 1989년 후반기부터 정부가 나서기 시작했다.

1990년 651명. 1991년 546명, 1992년 591명을 포상하게 되었고 지역 향토사학계에서 크게 활약한 결과이었다.

최근 10년간 정부에서는 국내 발굴은 도외시하고 만주, 러시아, 중국으로 파견된 공무원들이 호적 미비, 생사불명 이들은 포상케 하니 참으로 한심한 일이다. 국내에는 호적과 옥고 기록이 있으나 미 포상자가 2만 여 명인데 어찌하겠다는 발표도 없다.

국내 발굴단을 조직해 신속하게 발굴. 포상을 해 주고 2만 여명을 살려 주기를 호소, 탄원 합니다. 더 이상 향토사학자들에게 미루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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