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벌초 하는 날
진주성-벌초 하는 날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09.13 16:5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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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벌초 하는 날

‘형만 한 아우 없다’라는 옛말이 있다. 그러기야 하겠냐만 과거 우리들의 대가족제도에서 부모를 부양하고 가례나 제례를 주관하며 가족사에 앞장서서 무슨 일든지 처리를 해야 하고 결과에 따른 그 책임까지 지고 있을 때의 소리겠지만 추석에 형제들이 모이면 간혹 티를 낸다. 우리 집의 6형제도 기제사와 설 추석에는 모두 모인다. 해마다 두 차례의 기제사에도 아우들은 번번이 순서에 헛갈려 멋쩍어한다. 잔 올리라 하면 잔 올리고 뫼 올리라면 뫼 올리고 고축을 하려고 축문을 펼쳐 들면 눈치를 채고 부복한다. 명절 차례야 단 잔이라서 헛갈릴 일이 없으나 기제사에는 매번 시중을 들면서도 언제나 서툴다.

장형은 언제나 자신의 책무라고 그 책임의식에서 기억하지만, 동생은 형이 하는 대로 그저 따라 하면 되기 때문에 지나고 나면 잊어버린다. 정성은 다하겠지만 순서는 건성이다. 가례든 제례든 지역마다 가문마다 그 절차가 다르기도 하다. 다르다고 잘못인 것도 아니다. 하던 대로 이어가든 개선하든 문제 될 것도 아니다. 취지도 목적도 추모일뿐이다. 요즘은 기제사도 합하기도 하고 4대 봉제도 줄여서 시제에 올리기도 하며 제물도 제철 음식과 가족들이 좋아하는 음식으로 제상 차림의 격식도 실용으로 바뀌었다. 예법이든 법도이든 사람이 만든 것이므로 시대의 흐름에 걸맞게 사람이 고치면 된다. 뭐든 고칠 것은 고쳐가면서 사는 것이 삶의 지혜다.

허례허식을 줄이는 것은 바람직한 변화다. 추석 차례를 모시고 나면 조상 묘소의 벌초 이야기가 나온다. 어느 가정이나 할 것 없이 벌초는 모두 힘들어한다. 뙤약볕이 들볶는 때라서 더 힘겹다. 음력 8월 그믐 안으로 벌초를 한다. 처서 무렵이다. 처서를 지나면 수풀이 웃자라지 않고 잡초들이 씨앗이 여물기 전이라서 시기를 맞췄을 것이다. 하지만 요즘은 차가 닿지도 않는 첩첩산중은 우거진 수풀을 헤매다가 길을 잃고 돌아서는 경우도 있다. 해가 거듭되면 영영 접근조차 할 수 없어 폐묘가 될까 걱정을 한다. “뭘 그리 힘들게 해요? 용역에 맞기시지” 아래의 동생들은 해마다 입으로 벌초한다. 이태 전부터 어쩔 수 없어 가까이 사는 3형제 내외는 맛있는 음식을 넉넉하게 준비해 가을 벌초를 했다. 풀잎이 마르고 앞이 보이니까 어렴풋해도 길 찾기가 쉬웠고 멧돼지들이 다닌 길도 그나마 도움이 되었다. 늦가을 단풍의 또 다른 풍광을 즐기는 모처럼 가족 소풍이었고 벌초였고 성묘였다. 이번 가을에도 예초기 하나 지고 가족 소풍을 가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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