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다산과 강진
아침을 열며-다산과 강진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3 17: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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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다산과 강진

다산 정약용을 아는가? 누구는 안다 할 것이고 누구는 모른다 할 것이다. 안다 하는 사람도 그 정도가 각각 다를 것이다. 이름은 제법 알려져 있다. {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 같은 저서도 제법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내용은? 그러면 아마도 슬그머니 고개를 돌리는 사람이 대부분일 것이다. 이름조차도 실은 퇴계나 율곡에 비하면 좀 아니 많이 덜 유명하다. 저들과의 200 몇 십 년 시차 때문만도 아닐 것이다. 저들이 등장하는 한국은행권 지폐에도 다산의 얼굴은 없다.

그를 조금만 들여다보면 그 인품과 학식이 퇴-율에 비해 결코 뒤지지 않음이 곧바로 드러난다. 아니 냉정히 평가하자면 퇴-율을 능가한다고 말하고 싶은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관점이나 기준의 차이를 인정하더라도 다산의 수준은 절대 만만하지 않다. 퇴-율이 벗어나지 못했던 송대 신유학 즉 주자학의 한계를 생각하면 그것 대신 선진 본유학 즉 공맹학을 강조한 다산의 안목은 탁월했다. 유학을 표방하면서도 정작 공맹이 소외된 주자의 학문은 조선에 작지 않은 폐해를 끼쳤다. 다산은 그것을 꿰뚫어본 제대로 된 철학자였다. 자신의 철학적 문제의식도 분명했다. 이를테면, 무릇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나만은 마땅히 지켜야 한다. 내 밭을 등에 지고 달아날 자가 있는가? 밭은 지킬 것이 없다. 내 집을 머리에 이고 도망갈 자가 있는가? 집은 지킬 필요가 없다. 내 동산의 꽃나무와 과일나무를 능히 뽑아가겠는가? 그 뿌리가 땅에 깊이 박혀 있다. 내 서적을 가져다 없앨 수 있겠는가? 성현의 경전이 세상에 물과 불처럼 널려 있으니 누가 능히 이를 없애랴. 내 옷과 양식을 훔쳐가서 나를 군색하게 할 수 있겠는가? 이제 천하의 실이 모두 내 옷이요, 천하의 곡식이 모두 내 밥이다. 저가 비록 한둘쯤 훔쳐간대도 천하를 통틀어 다 가져갈 수야 있겠는가? 결국 천하의 사물은 모두 지킬 것이 없다. 오직 이른바 ‘나’라는 것은 그 성질이 달아나기를 잘하고, 들고 나는 것이 일정치가 않다. 비록 가까이에 꼭 붙어 있어서 마치 서로 등지지 못할 것 같지만, 잠깐만 살피지 않으면 가지 못하는 곳이 없다. 이익으로 꼬이면 가버리고, 위협과 재앙으로 으르면 가버린다. 구슬프고 고운 소리를 들으면 떠나가고, 푸른 눈썹 흰 이의 요염한 여인을 보면 떠나간다. 한번 가기만 하면 돌아올 줄 모르고, 붙들어도 끌고 올 수가 없다. 그래서 천하에 잃기 쉬운 것에 ‘나’만 한 것이 없다. 마땅히 꽁꽁 묶고 잡아매고 문 잠그고 자물쇠로 채워서 굳게 지켜야 하지 않겠는가.

이 문장만 보더라도 그 철학적 수준이 충분히 짐작된다. 이런 건 제대로 뭔가를 아는 철학자만이 할 수 있는 말이다. 공맹노장 같은 일류의 반열이다.

그런 다산이 무려 18년 세월, 긴 유배생활을 한 것도 제법 알려져 있다. 경상도 장기(현 포항)와 전라도 강진에서 인생의 상당한 시간을 보냈다. 특히 소위 ‘땅끝’ 근처 강진에서 12년을 살았다. 그에겐 아마도 사무친 일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죽기 전 자식들에게 남긴 저 유언이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한다.

“한양을 벗어나는 순간 기회는 사라지니 무슨 일이 있어도 한양에서 버텨라.”

그러나 “세상에 완전한 복은 없다(少完福)”고 한 그의 말을 뒤집어 보면, 세상에 완전한 ‘화(禍)’, 즉 나쁘기만 한 일도 없다. 그는 바로 그 유배생활 덕분에 500여권이라는 엄청난 규모의 저술을 할 수가 있었다. 다산초당에서 초의선사와의 다향 그윽한 교제도 가능했을 것이다. 그가 한양에서 계속 정조의 총애를 받으며 승승장구했더라면, 그래도 저 저술들을 할 수가 있었을까? 그에게는 좀 매정한 소리일지 모르겠으나, 후대의 우리에게는 정승 정약용보다 저 여유당전서의 저자 정약용이 훨씬 더 위대하고 고마울 수도 있다.

그런 정약용이 지금도 없으란 법은 없다. 주변을 둘러보자. 뛰어난 자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고약한 세력들에게 밀려 한양에서 쫓겨나 창원이나 진주에서 글이나 쓰고 차나 마시며 와신상담의 세월을 보내고 있는 다산 같은 인재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는 바로 당신이 초의선사이기를 기대할 지도 모른다. 잘 대접해주기로 하자. 다산을 알아보고 좋아해준 200년 전의 저 초의선사처럼. 위로와 알아줌은 언제나 어디서나 윤리적 덕목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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