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꽃은 누구를 위해 예쁜가?
진주성-꽃은 누구를 위해 예쁜가?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4 15:34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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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꽃은 누구를 위해 예쁜가?

꽃은 벌과 나비를 불러드려 꽃가루를 나누려고 향과 꿀을 내놓는다. 향과 꿀만 내놓으면 될 것을 왜 고운 빛깔로 예쁘고 아름답게 피어날까? 제멋대로 두리뭉실하든 괴상망측하든 그 모양새야 어떠하든 꿀과 향기만 있으면 얼마든지 벌과 나비를 불러들일 수 있을 텐데 말이다.

벌과 나비가 겉모양을 보고 꽃을 찾지 않는다는 것은 분명하다. ‘화중지왕이 연화지만 봉접이 불왕래’라고 했다. 꽃 중에 왕이라 할 만큼 연꽃은 꿀과 향을 빼고는 다 갖춘 꽃이다. 예쁘다, 아름답다, 곱고 우아하다. 청순하다. 격조 높다. 온갖 수식어를 다 동원해도 모자랄 만큼 황홀하기까지 한 예쁜 꽃이다. 하지만 향기가 없고 꿀이 없다. 그래서 벌과 나비가 오가지 않는다고 했다.

반면에 밤나무꽃은 얼핏 봐도 징그럽게 생겼다. 기다란 벌레 같기도 하고 지네 같기도 하여 꽃이라고 부르기조차 망설여지는데 그 진한 향과 꿀 때문에 벌과 나비가 떼어지어서 오간다. 그러고 보면 벌과 나비는 꽃의 겉모양새와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게 분명한데 모든 꽃은 예쁘고 곱고 아름답다. 자기만족을 위한 아름다움일까. 우리 몰래 거울이라도 비춰보며 단장을 하고 즐기기라도 하는 걸까. 그런 것도 아니면 왜 사람들을 홀리는 것일까? 동물은 보호색으로 겉을 위장하고 사람은 속을 숨겨서 진실을 위장하는데 꽃은 티가 나게 속과 겉을 예쁘게 내놓는다. 어루만지고 쓰다듬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만지면 멍드니까 보기만 해 달라고 마음을 졸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왜? 누구 좋아라고 탐 나게 곱고 매혹적으로 예쁜가? 산새가, 들새가, 아니면 누구 좋아라고? 분명 오가는 사람들 모두가 좋아라고 방싯거리는 것일 거다. 씨앗은 바람에 날려서 멀리 날아가기도 하고 앉은자리에 떨어져 근처에서 후세를 이어간다. 그렇다면 굳이 옮겨 달라는 뜻도 아닌 것 같다. 무얼까? 왜 곱고 예뻐서 사람들을 넋을 뺀단 말인가? 꿀은 벌과 나비에게 주고 환희는 사람들의 몫으로 내놓은 걸까? 그냥 두고 예쁘게 보기만 하면 그새 씨앗을 여물게 하겠다는 속내가 있어서일까? 오가며 스쳐도 누구와도 반가워지려는 무한의 베풂일까. 사랑과 평온, 기쁨과 행복을 위한 간절한 기원일까.

누구의 속내도 가늠하지 않고 살아온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했는데 산자락의 외진 길 언덕배기에 해가 지면 달을 보며 별과도 속삭이는 들국화를 마주하고 속내를 가늠한 것이 부끄럽고 미안하다. 그저 ‘너’여서 좋고 ‘너’이기에 그냥 좋아 내가 ‘너’이고 싶은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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