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신간회 창립 95주년 기념(5)
진주성-신간회 창립 95주년 기념(5)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5 17:05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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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
추호석/진주 문화원 향토연구실장·향토사학자·시인-신간회 창립 95주년 기념(5)

김영식(金永植)은 진주시 성내 1가 1404번지 출신으로 고경인, 강영호, 박영환, 정성호, 박두석 등과 함께 진주공립보통학교 5회 졸업생이다. 진주청년회 임원(1925.10), 신간회 간사(1927.10, 1929.2), 신간회 교양부 겸 상무집행위원(1929.8) 등 만 4년간 활동했다. 정준교 3・1 항일지사가 진주유치원장으로 있던 1924년 10월부터 학무위원으로 봉사했다. 생업으로 이발소를 경영했다고 한다.

1927년 10월 신간회 간사에 선출되고 1929년 2월 신간회 간사에 재선된 오경표는 보천교 소년회 재무 겸 유락부장(1923.5)이었고 3・1 유공자 천명옥(千命玉)과 함께 진주유치원 교사(1924.10)였고 동아일보 진주지국 기자(1923.6)로 활동했다. 그후 중앙시장통에서 아일지물포를 경영했고 진주건홍주식회사 상담역(1936)으로 역할을 바꾸기도 했다. 또 박재표가 조카이며 박재호의 장남인 박규석과 교섭하여 진주유치원을 20년간 경영한 교육공로자였다.

강상호(1887~1957)는 형평운동가로 유명한데 진주공립보통학교 1회 졸업(1910), 진주공립농업학교 1회 졸업(1912), 진주 3・1운동 때 시위를 주도하다 일경에 검거되어 진주감옥에서 1년간 옥중 고생했다.

출옥 후 동아일보 진주지국장(1920.4), 진주여고 설립 발기인(1920), 형평운동의 창립자(1923.4), 경남도청 부산 이전을 반대한 위원(1924.12)이었다. 강상호의 첫 번째 작품인 경남일보 창간 축시가 경남일보 1909년 11월 6일자에 남아있다. 학생대표였던 그는 총무인 이주현(항일투사)과 함께 그의 이름이 강경호라는 초명으로 등재된 것이다. 신간회 창립발기인으로 활동했고 간사에 선출되었고, 1929년 12월에도 간사에 선출되었다.

강상호의 아우 강영호(1896~1950)도 1927년 10월 신간회 간사에 선출되었는데, 그 역시 다양한 활동가였다. 휘문부고 졸업(1912), 동경대학 문학부에 재학 중 아동문학동인회와 색동회를 조직(1923.3)하여 전국 35만명이 동시에 어린이날 행사가 펼쳐지도록 노력했다.

진주에 거주할 때는 진주청년회 회계(1920.7), 진주청년친목회 간사로서 항일전단 수천장을 서부경남에 배포하다 일경에 발각, 체포된 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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