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자랑스러운 붕우(朋友)들
진주성-자랑스러운 붕우(朋友)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06 16:49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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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
심동섭/진주노인대학장-자랑스러운 붕우(朋友)들

필자는 산청의 시골에서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나왔다. 해방이 되고 이내 6.25를 만나 참 어렵던 시절이었다. 1958년에 중학교에 입학하였는데, 함께 졸업했던 초등친구들이 보리쌀 4〜5되 정도 되는 등록금을 낼 수 없어 대부분 진학을 포기하고 겨우 6명이 진학을 했다. 입학을 하니 73명이 한 반에서 공부하게 되었는데, 지금생각하면 말 그대로 콩나물 교실이었다.

희망에 부풀어 입학한 중학교는 기다란 단층 기와집이었고, 지금생각하면 푼돈에 불과한 등록금을 내지 못해 수업도중 집으로 쫓겨 가는 경우도 많았고, 결국 졸업 때는 4명이 탈락하고 69명이 졸업을 했다. 대부분 어렵고 비참하리만치 가난했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중학교 재학 3년 동안에 교장선생님이 3분이나 바뀌었고 교과 담당선생님이 모자라 강사가 두 분이나 있었다. 어떤 과목은 초등학교 선생님이 왔다 갔다 했으니 이것이 그 당시의 교육 현실이었다. 같은 스승 밑에서 함께 수학한 벗들을 붕우(朋友)라 했던가. 필자가 장황하게 이런 열악했던 시절을 늘어놓는 것은, 진흙 속에 연꽃이 핀다는 말이 생각나서이며, 이런 어려운 여건에서도 동문수학한 대단한 우리 붕우들을 자랑하고 싶어서이다.

인생 황혼에 생각해 보니 우리보다 먼저 졸업한 선배들이나 또 후배 그룹에서는 군의원이나 시의원, 도의원도 하고 제법 잘나가는 동문들이 많고 또 총 동창회 때 보면 ‘자랑스러운 동문상’을 수상하는 것도 보았다. 질투심이 있어서 하는 말이 아니고 자랑스러움을 부정하는 것도 아니다.

그런데 우리 동기붕우들은 희한하게도 군의원 한사람 없고 무슨 벼슬을 해 보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 못나서 일까 자랑스럽지 못해서 일까? 명예와 권세를 뜬구름 보듯 했던, 그래서 우리 붕우들 자랑이 하고 싶은 것이다.

6.25 전쟁으로 강산이 초토화 된 폐허 속에서 성장한 우리들, 인동초처럼 오뚜기처럼 끈질긴 집념으로 굽힐 줄 모르며 살아온 우리들, 하나같이 대단하고 자랑스럽다. 공무원에서 교육계에서 언론계에서 사업계에서 각계각층에서 충실히 제몫을 담당하고 인생황혼을 맞았다. 일신의 영달을 위해 비굴하지도 않았고 하나같이 당당히 살았다. 있어도 없는 듯 하며 자기를 내 세우는 이도 없었지만 고향발전을 위해 선뜻 1억 원을 내는 친구도 있고, 요소요소에서 고향사랑 고향발전을 위해 하나같이 정성을 쏟고 있으니, 이 어찌 겸손하고 자랑스럽지 않은가. 말보다 묵묵히 의(義)를 실천하며 올곧게 살아온 우리 붕우들이 그 누구보다 자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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