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가을에 물든 단상
진주성-가을에 물든 단상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11 17:0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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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가을에 물든 단상

누구든 하루도 빠짐없이 사람은 사람들과 만난다. 가정과 직장이나 거래처에서는 매일 같이 같은 사람을 만나지만 바깥에서의 만남은 대부분이 친구들과 만남이고 이를 계기로 친구의 친구와도 만나서 새로운 친구가 되기도 한다. 한 사람의 친구로 인하여 마치 피라미드형의 조직 구도로 확산하며 온갖 새로운 일들이 생겨난다. 무심코 주고받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서로에게 정보가 되어 소통의 관계가 형성되며 알음알음이 연결되어 저마다 자신을 주축으로 ‘지인들’이라는 방대한 구성체로 변한다. 그러다 보면 일상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더라도 인간관계라는 정서적인 개성의 차이로 멀고 가까움이 느껴지고 다른 사람의 눈에도 티가 난다.

이해관계가 생기면 틈새가 벌어지기 마련이지만 아무런 이해관계도 없이 생기는 틈새의 원인은 복잡하지 않다. ‘준 것 없이 밉더라’다. 얌체 짓을 해서도 아니고 해코지를 해서도 아니며 누가 봐도 그저 무난한 것 같은데 왜 ‘준 것 없이 밉더라’일까. 옛말에 ‘사람 미운 것은 못 본다.’라고 했다. 오죽했으면 며느리가 미우면 며느리의 발뒤꿈치가 달걀 같아서 밉다고 했겠나. 발뒤꿈치가 달걀 같으면 얼마나 예쁜가. 사람이 미우면 온갖 것이 다 밉게 보이기 마련이다. 문제는 지인끼리의 미움은 ‘준 것 없이 밉다’다. 그로 인해 멀어지기도 하는데 원인을 찾으려고 하지 않거나 찾아내도 고치려고는 하지 않고 거리를 띄운다. 은연중에 비교의 대상으로 여겨지든지 아니면 그 사람 때문에 자가가 남의 눈에 가려지기 때문일 수도 있고 아무튼 스스로 차이를 만들어서 자기만의 피해의식을 갖는다. 학력이 높거나 지위나 직위가 높거나 재산이 많거나 재능이 많거나 덕망이 높거나 인기가 좋거나 등 비교할 이유가 아닌데도 스스로 비교하며 자격지심을 갖는 것은 아닌지 짚어볼 일이다. 엊그제 학방사에서 축대 위에 얹혀있는 머리만 남은 돌부처와 나란히 앉아 준비해간 보온컵의 커피를 마시며 “당신 참 못생겼는데 좋다”라고 했더니 돌부처가 환하게 웃는다.

주변의 들국화도 목을 빼고 웃는다. 이 사람은 이래서 좋고 저 사람은 저래서 좋다고 보면 누구도 미운 사람이 없다. 단풍이 물들기 시작하는 가을이다. 풍요로움의 넉넉한 너그러움에 흐뭇하기도 하고 가만히 앉았어도 행복해지기도 하는데 더러는 서글퍼지기도 하고 그리움에 젖기도 하여 외로움을 타는 가을은 모르는 사람도 그리워져 단풍만큼이나 마음도 고운 빛깔로 물들어가는 계절이다. 지금이 가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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