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여유란 사무사(思無邪)다
칼럼-여유란 사무사(思無邪)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0.17 16:54
  • 15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여유란 사무사(思無邪)다

‘시경(詩經)’은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시가(詩歌)집으로, 오경(五經)중의 하나인데 주(周)나라 초부터 춘추시대(春秋時代)에 이르는 수 천 수의 노래 가사 중에, 311편만 뽑아 공자께서 편집한 책이다. 요약해 보면, 남녀 간의 절절한 사랑 노래를 비롯하여 귀족들의 노래, 나라의 큰 행사가 있을 때 부른 노래, 생활과 감성에 좋은 영향을 주는 노래 등이다. 예나 지금이나 노래는 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힘든 마음을 보듬어 준다. 아픈 사람에게는 위안을 주고, 즐거운 사람에게는 행복을 더해 준다. 음악과 노래는 각종 행사의 품격을 높여 주며, 흩어 진 사람들의 마음을 한곳으로 모이게 한다.‘시경(詩經)’의 작품 형식을 좀 더 세분해 보면 풍(風)·아(雅)·송(頌)·부(賦)·비(比)·흥(興)으로 나눌 수 있다. 풍(風)은 지방을 나타내는 노래로 노(魯)나라 노래는 노풍(魯風), 제(齊)나라 노래는 제풍(齊風)이라 했으며, 아(雅)는 규범과 표준에 맞게 만든 노래를 말하며, 송(頌)은 나라의 공식적인 행사에 쓰였던 노래, 부(賦)는 직접적인 표현의 노래, 비(比)는 다른 것을 연상케 하는 비유의 노래, 흥(興)은 기쁨이나 슬픔의 정서를 자유롭게 표현한 노래이다.

얼마 전 코로나가 지구를 강타하여 절망에 허덕이고 있을 때 한국에는 또 하나의 열풍이 불어 닥쳤다. 매일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작은 위안을 줬던 일명‘트로트 열풍’이다. 트로트는 중장년층의 노래인 줄만 알았던 청년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애틋하면서도 직설적이고 간절하면서도 흥에 넘치는 트로트는, 우리들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해 주었다.

‘논어’〈위정편〉2장에 보면 「子曰 詩三百 一言以蔽之 曰思無邪(자왈 시삼백 일언이폐지 왈사무사)」풀이하면 공자께서는 여기서 ‘시경’의 시 삼백 편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생각에 사함이 없다. 고 하였다. 공자는 사무사(思無邪)의 사(邪)는 ‘간사하다, 마음이 바르지 않다, 사악하다, 품행이 부정하다.’라는 뜻이다. 즉 사무사는 생각에 사함이 없다. 생각이 간사하지 않다. 생각이 바르다는 의미이다. 개인적인 의도나 특정 집단의 목적이 들어 있지 않은 기쁨과 노함, 슬픔과 즐거움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 노래 가사가 바로 ‘시경’이라는 의미이다.

남녀노소, 부귀빈천을 불문하고 늘 바른 생각만 할 수는 없다. 자기도 모르게 나쁜 생각이 들 수 있는 것도 어쩌면 당연지사라 할 수도 있다. 특히 국가나 조직의 지도자들은 사람들에게 더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특히 더 중요하다. 지도자의 생각과 사상이 바르면 가정·사회·국가의 다양한 문제들을 빠르게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자께서는 시와 노래라는 좋은 도구를 이용해 지도자들의 생각에 사특함이 없도록 하기 위해 바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시경’을 편찬한 전략이 숨어 있다고 볼 수 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문무백관들은 조정이나 군영에서 퇴근하여 집으로 돌아오면, 붓을 들어 글을 쓰고 책일 읽고 시를 쓰면서 하루를 정리했다. 이순신 장군은 하루도 편안한 날이 없는 전쟁 통에서도 매일 일기를 쓰고 시를 쓰면서 가슴속에 번민을 풀었다. 율곡 이이선생께서는 위로는 변화를 싫어한 왕 선조를 모시고 아래로는 힘없고 미래의 희망이 없는 백성들을 구하고자 불철주야 뛰면서도 조정에서 퇴청하면 글을 쓰고 시를 쓰면서 답답함을 풀었다고 한다. 같은 관료이면서도 시 한 줄, 책 한 권 남기지 못한 문부백관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그들은 업무의 번민과 답답함을 술과 기생으로 해소했다. 백성들은 죽건 말건, 경치 좋은 곳에 정자를 짓고 자신들만의 풍류를 즐기면서 시간을 보냈다. 도탄에 빠진 백성들이 욕하는 줄도 모르고 다시 못 올 기회를 만끽하며 흥청망청 아니었던가?

여유 있는 삶이란 과연 무엇일까? 우리 모두는 지금까지 삶을 되돌아보면 똘똘한 집 한 채 만이라도 가져보려고 모든 시간과 노력을 다해 왔다. 노래·그림·등산·낚시·운동·여행 등 그 어떤 작은 여유도 없이 집 한 채에 모든 걸 포기해야 했던 지난 시간이 너무도 아쉽기만 하다. 제대로 된 취미생활도 하나 못하면서 열심히 살아왔다고 말하는 자신이 미워지기도 한다. 직장에서는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휴가도 한 번 가지 못했고, 가족을 위한 주말 나들이는 꿈에 불과한 사치이기도 했다. 지금까지의 삶이 나다운 삶이었는지 나답지 않은 삶이었는지 헷갈리기도 한다. 어쩌면 2500년 전의 ‘시경’속에 그 답이 있을지 모른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