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
이수정/창원대 명예교수・철학자-천하다대통령 선거, 국회의원 선거, 시도지사 선거 등 주요선거를 치르면서 그리고 국무위원 청문회를 지켜보며 우리는 매번 참담한 심정에 빠져든다. 그 공방을 통해 소위 ‘주자’ 및 ‘후보’들과 그 주변 인물들의 말과 행태가 만천하에 드러나고 그것을 두고 마치 공식처럼 ‘서로 쥐어뜯기’ 난타전이 펼쳐지기 때문이다. 이젠 그런 게 아주 당연한 듯 여겨지기도 한다. 그들 중 누군가는 ‘당선자’가 되고 ‘권력자’가 된다. 그런 그들이 그대로 고스란히 ‘나라’를 대표하는 이미지가 되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도 그 행태는 별로 달라지지 않는다. 천하다. 쌍스럽다.
당사자들의 문제적 언행도 그렇지만, 그 꼬투리를 잡고 얼씨구나 하고 비난전을 벌이는 반대쪽도 별다를 바 없다. 일단 흠집 내서 이미지를 훼손하고 보자는 식이다. 여론도 거기에 반응을 하니 재미를 들였다. 그런 건 더 천하고 더 쌍스럽다. 경고하고 질타해야 할 언론도 오히려 부채질을 한다. 그런 일들을 하느라고 나라와 백성과 도민-시민의 삶은 그들의 안중에서 멀어진다. 뉴스 보기가 민망하고 겁이 난다. ‘뭣이 중헌디?’ 소리가 절로 난다.
산업화-민주화를 거친 우리나라가 향후 나아가야 할 유일한 방향은 이제 ‘선진화’ ‘고급화’밖에 없다. 질적인 고급화를 통해 세계최고를 지향해야 하는 것이 시대의 과업이고 역사와 민족과 후손을 위한 지엄한 명령이자 의무인 것이다.
언행의 흠집은 결코 칭찬할 일이 아니지만 ‘적진’의 흠집에 대한 폭로와 비난은 더욱 칭찬할 일이 아니다. 그 자체가 사회의 공기를 오염시키기 때문이다. ‘문제’는 분명히 문제지만 명백한 범죄행위가 아닌 한, 웬만한 것은 드러내 문제 삼지 않는 것이 차라리 낫다. 윤리와 도덕에게 맡겨야 하는 것이다. 그걸로 서로 죽기 살기로 쥐어뜯기보다는 당사자가 부끄러워하도록 사회적 분위기를 만드는 것이, 그렇게 해서 100년 후를 기약하며 질적인 고급화를 위해 한걸음이라도 내딛는 것이 진정으로 필요하고 중요한 일이다.
그렇다면 물어보자. 우리가 경험하는 이 ‘천함’과 ‘쌍스러움’은 도대체 왜 생겨나게 된 것인가. ‘훌륭함’(=덕)에 대한 지향과 노력, 즉 그런 분위기와 교육이 실종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사회에서 그런 것은 그저 인기가 없을 뿐만 아니라 공공연히 퇴출절차를 밟고 있다. 돈과 권력과 인기, 그런 것만이 ‘사람’의 기준이 되고 있다. 공자와 소크라테스가 경계했던 것이다. 도와 정의라는 기준은 증발했다.
이젠 아무도 그것을 가르치지 않는다. 훈련도 연습도 없다. 그것을 알려주는 말도 글도 행방불명이다. 그것을 체현한 소위 ‘모범’도 주변에서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신문이나 티비 등을 보면 상황은 악화일로다. ‘전국민의 천박화’가 착실하게 진행중이다. 저 문제적 정치인들은 그 대표적 상징이다.
지금 우리가 이럴 때인가. 우리는 미중러일이라는 소위 세계 4강에 둘러싸여 있다. 이들과의 관계는 한결같이 삐걱거리고 있다. 바로 윗동네에 북한이라는 현실적 위협이 도사리고 있다. 대만도 중국의 광동성도 이미 우리 경제를 앞질렀다. 신냉전체제는 이미 시동을 건 모양새다. ‘사람’ 말고는 별로 내세울 것이 없는 우리나라다. 그러니 그 사람의 ‘질’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자, 그러면 이제 어쩔 것인가. 석고대죄와 개과천선을 기대하기는 정말 어렵다. 동해물과 백두산이 마르고 닳는 게 차라리 빠를 것이다. 비난 대신에 이해와 용서를. 우선 그것부터 실천해보면 어떨까. 공자와 예수의 철학이었다. 그 연장선에서 ‘인간’ 으로서의 ‘가치’를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철학’이라는 게 바로 그런 것을 가르쳐준다. 그 정점에 ‘공자-부처-소크라테스-예수’의 철학이 있다. 이른바 ‘궁극의 철학’이다. 그 공부를 통해 우리는 ‘질적인 인간’ ‘고급진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 우리나라를 ‘질적인 고급국가’ ‘세계제일의 국가’로 만드는 원천이 된다.
저들의 책 속에는 그것을 위한 ‘좋은 말씀’들이 넘쳐날 정도로 많다. 그런데 아무도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 우리의 관심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한번 진지하게 점검해보자. 소위 ‘적진’의 흠집을 찾아 꼬투리를 잡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지는 않은가. 칭찬할 일이 아니다. 그런 것은 천하다. 쌍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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