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12주년)진주 출신 세계적 화가 이성자
(창간 12주년)진주 출신 세계적 화가 이성자
  • 강미영기자
  • 승인 2022.11.01 16:10
  • 5면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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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화와 초월의 공존 ‘동녘의 대사’ 이성자 화백
1988년 원로작가 초대전에 참가한 이성자 화백의 모습.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1988년 원로작가 초대전에 참가한 이성자 화백의 모습.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한국인 최초 해외 유학후 활동 시작…동서양 넘나드는 양극 공존

김해 수로왕릉 제의행사서 발견한 태극문양 ‘음양’ 모티브 발전
구상 시대에서 우주 시대까지 60여년간 예술 세계의 변화 꾀해


“동양의 깊은 철학과 서구의 풍부한 재료를 혼연일체시켜 그림의 에스페란토(국제공용어)를 만들고 싶다”-1967년 파리 개인전에서

한국과 프랑스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경남 출신 고(故) 이성자(1918~2009) 화백은 깊이 있는 영감으로 동서양을 넘나들며 현대 미술사의 흐름을 이끌었다. 60여년의 세월 동안 회화, 목판화, 도자기, 시화집 등 1만4000여점의 작품을 남긴 그는 하나의 화풍에만 매몰되지 않고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작업 방식을 시도했다.

이성자는 해외에서 유학 후 작품 활동을 한 최초의 한국 미술가였으나 오히려 한국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사실과 여성이라는 이유로 당시 국내 미술계에서 소외되며 평가 절하를 당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이에 굴하는 대신 자신만의 미적 세계를 펼치며 해외 예술인들과 교류를 활발히 하고 이를 작품의 토대로 삼아왔다.

프랑스 아카데미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미술 공부를 하고 화백으로서의 삶을 걸었지만 이성자의 예술에 담겨있는 정서 밑바탕에는 어린 시절을 보낸 경남의 풍경도 담겨 있다. 이성자는 ‘세라믹의 조형미학연구 현대미술선언’에서 “나는 가끔 내 조상의 나라로 돌아가 내 친구들과 재회하고 한국적 미학을 되찾고 풍경을 바라보고 그 흙을 밟고 만져야만 한다. 나는 그 흙과, 또 세계의 세라믹 창조자들과 완벽한 공생 관계에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이성자의 작품은 동양의 정신과 서양의 물질을 대조하는 것이 아닌, 국경을 초월한 양극의 공존, 혼연일체의 융합을 보인다.

투레트에서 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이성자 화백.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투레트에서 목판화 작업을 하고 있는 이성자 화백.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이성자는 학창 시절을 보낸 고향 진주를 영원한 ‘모천’으로 여기며 늘 그리워했다. 이에 2008년 3월 진주시에 유화 74점과 판화 237점, 판화와 시 3점, 수채화 16점, 소묘 28점, 도자기 15점, 아크릴 2점 등 375점의 작품을 기증하며 ‘이성자미술관’ 건립을 통해 문화예술 및 관광도시로서의 진주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자 했다. 이에 진주시는 2015년 7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을 개관하고 이성자가 남긴 고향사랑의 마음과 지역 문화유산 가치를 시민들에게 알리고 있다.

짧은 시간 머물렀던 김해에서도 이성자의 예술적 감각은 싹 틔었다. 아버지를 따라간 김해 수로왕릉 제의행사에서 마주한 태극문양은 그의 작품세계를 관통하는 창조적인 영감과 소재가 됐다. 어린 이성자가 마주한 숭선전 제례의식으로부터는 시적 우주와 초월적 세계가 나타나며 우주의 시대를 열었다. 하늘과 땅, 남자와 여자, 음양의 조화를 나타내는 태극문양에서 이성자 작품의 주 모티브인 ‘음양’과 ‘은하수’가 나왔으며 음양은 이후 미국 대도시에서 창조적 모티브로 재발견하게 된다.

이성자의 직시하는 세상은 하나로 단정되지 않는다. 이 시선으로 나타난 세련된 작품은 당시 걸출한 예술가들이 넘쳐흐르던 세계 미술의 중심 파리에서도 명성을 떨치며 애호가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성자기념사업회는 이성자의 회화 시기를 ▲구상 시대 ▲추상 시대 ▲여성과 대지 시대 ▲중복 시대 ▲도시 시대 ▲음과 양, 초월 시대 ▲자연 시대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 ▲우주 시대 등 9장으로 나눈다.


구상 시대(1954~1956)는 이성자가 입학한 그랑드 쇼미에르는 구상수업 중심의 영향을 받았는데, 단단한 구성과 구조적 소재가 특징적이다. 이성자는 이곳에서 이브 브라이예, 앙리 고예츠에게 회화를 배우고 오십 자드킨에게서 조각을 배웠다. 이중 고예츠의 조교로 발탁된 이성자는 이를 기회로 세계 미술의 흐름을 공부하며 아카데미의 주목을 받았다.

수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 1월 N.1, 98.
수성에 있는 나의 오두막, 1월 N.1, 98.

그는 1956년 파리현대 미술관에서 열린 국립미술협회전에 ‘눈 덮인 보지라르 거리’를 출품하며 본격적으로 작가로 데뷔한다. 이 작품으로 이분법적 구도로 뒤쪽의 기하학적인 건물들과 텅 비어있는 거리와, 이에 대비되는 나무로 동양적 정서를 표현했다는 호평을 얻었다. 이후 이성자는 추상화 작업 스타일로 옮겨가면서 오베르뉴에 있는 기요메 갤러리에서 첫 개인전을 개최한다.

추상 시대(1957~1960)의 작품은 구상시대의 작품과 화면상의 질감에서 서로 어우러지며 그림 층을 두텁고 농밀한 굵은 터치로 처리한 것이 특징적이다. 1958년 파리 라라뱅시 갤러리에서도 첫 개인전을 가졌는데, 이곳에선 목판화로 전시 포스터를 제작하고 ‘신들의 황혼 3’ 이후의 추상화를 통해 여성과 대지에 관한 질문을 던지고, 동양적이며 서정적인 추상을 선보였다.

이성자는 여성과 대지 시대(1961~1968)라는 주제로 캔버스를 채우기 시작한다. 1962년 샤르팡티에 갤러리에서 열린 단체전 ‘에콜 드 파리’에서 이성자는 한국화가 최초로 작품을 출품하는 영광을 안으며 프랑스 문화성에서도 이성자의 작품 한 점 구입하게 된다. 이때 출품한 ‘내가 아는 어머니’는 어머니의 환갑을 축하하며 그린 작품으로, 어머니라는 존재를 어느 하나로 한정 짓지 않고 포괄적인 대지로 표현해 ‘파리에 떠오른 직녀성’이라는 호평을 얻는다.

배움에 있어 누구보다 열려있던 이성자는 1969년 미국을 방문해 팝아트의 위상을 확인하며 중복 시대(1969~1971)를 맞이한다. 미국 대도시 고층 빌딩과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 위에서 바라본 야경은 여성과 대지를 구성하던 모든 모티브와 혼재되면서 중복 시대의 빛의 흐름으로 나타난다.

시간의 초월, 5월, 76.
시간의 초월, 5월, 76.

도시 시대(1972~1974)의 작품에선 미래 도시가 추구해야 할 모습을 ‘원’이라고 말하며 원 안에 음양을 담는다. 원을 두 개로 나누는 형식과 삼원색을 바탕으로 나타내는 미래 도시는 음과 양, 은하수의 조화를 담는다.

이어지는 음과 양, 초월 시대(1975~1976)에선 자연과 인간(기계)의 일치를 이루고자 하는 작가의 고민이 묻어나온다. 그 중 나무를 캔버스에 직접 붙여 목제의 독특한 질감과 색감의 대비를 이루는 작업 방식은 이차원의 회화에 조각의 삼차원 특성을 더하며 음양의 초월을 보인다.

바다와 숲 등을 소재로 자연 시대(1977~1979) 시작한 이성자는 도시를 자연과 우주로 가져간다. 그에게 ‘동녘의 대사’라는 애칭을 붙여준 미셸 뷔토르도 이 시기에 만난다. 1997년 자크 마타라소 서점을 통해 누보 로망 문학가 미셸 뷔토르를 알게 된 이성자는 목판화에 그의 캘리그래피를 도입한 공동 작업을 계기로 평생 우정과 예술적 교류를 나눴다.

땅을 벗어나 하늘로 시선을 옮긴 이성자는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길 시대(1980~1994)를 연다. 북극과 알래스카 상공에서 바라본 백야와 설산, 오로라에서 발견한 순수한 세계는 이후 이성자의 작품 세계에 중요한 요소를 차지한다. 붉고 푸른 하늘과 새하얀 봉우리 사이에서 무지개빛의 원형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사이에서 나타나는 별은 우주 시대(1995~2008)로 이어진다. 이성자는 동양의 철학과 서양의 과학으로 바라본 우주를 조화시키며 그 구조를 꿰뚫는다.

2009년 3월 8일, 대지와 도시, 자연, 하늘의 여정을 거쳤던 이성자는 투레트에서 노환으로 타계하며 우주로 떠난다. 격동의 시대에 태어난 이성자는 삶에서 겪었던 고통에 굴하지 않고 스스로에 대한 확신과 낙천성, 불굴의 용기를 갖고 예술로 승화해나갔다. 한계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하게 열린 초월적 세계를 응시했던 이성자의 작품은 우리의 심층에 걸어 잠긴 문을 서슴없이 열어젖힌다. 강미영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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