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칼럼-이태원 사고 여전히 안전불감증
현장칼럼-이태원 사고 여전히 안전불감증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02 17:13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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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원태/창원총국 국장
최원태/창원총국 국장-이태원 사고 여전히 안전불감증

이태원 사고 소식을 듣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팠다. 자식을 먼저 떠나보낸 부모에게는 그런 청천벽력이었다. 참척(慘慽)의 고통이라고 할까 겪어보진 않았지만 세상에서 가장 참혹한 슬픔이다.

참으로 안타깝고 비통하다. 선진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후진국형 참사를 또 겪어야 한단 말안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모두가 깊이 반성할 때이다. 대형 참사와 사고가 날 때마다 전 국민적 관심사가 되어 상호협조하고 돕는 국민성은 우리 민족의 장점이다. TV를 보는 사람들은 안타까워하고 비운의 눈물을 흘리는 분들도 있다.


'무지개 영성'이란 책에 의하면 신생아들은 다른 아이의 울음소리를 들으면 따라 울기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나 아기들이 자기 울음소리를 녹음하여 들려줄 경우에는 거의 울지 않는다고 한다. 생후 14개월이 지난 아기들은 다른 아기가 울면 따라 울 뿐만 아니라 다른 아기가 아파하는 것을 느끼고 그것을 덜어 주려고 애를 쓴다.

이와같이 다른 존재의 고통에 대하여 본능적으로 관심을 가지는 사회지능이 사람들에게 있다. 다른 사람의 고통을 보는 것만으로도 자신이 아픔을 느끼는 감정을 갖는다. 인간이 서로 사회적으로 연결되어 공감하고 사회지수가 높아진다. 그래서 온 국민이 나의 일처럼 아파한다.

'하인리히 법칙'이 있다. 대형사고에는 반드시 전조가 있단다. 한 번의 큰 재난이 발생하기 전에 29번의 작은 사고가 있고 그에 앞서 300번의 사소한 전조가 나타난다고 한다. 1대 29대 300으로 알려진 법칙이다. 100여년 전에 대서양에서 침몰한 초호화 여객선 타이타닉호의 비극도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고 한다.

여객선을 초호화판으로 만들기 위해 내부구조에 결함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출항이 늦어지자 유빙이 떠다니는 위험지역에서 과속으로 배를 몰았다고 한다. 계속된 빙하 경고도 계속 무시했다. 감히 '누가 이 배를 어쩌랴'라는 자만심 때문이었다.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기 전날 밤에 경비원이 식당가 바닥에서 함몰부분을 발견했고 사고 당일엔 천장에서 물이 새고 바닥이 갈라져 전조가 있었다.

세월호 참사도 그냥 일어난게 아니라는 중론이다. 베테랑 선장의 교체, 안전교육 미비, 무리한 운항, 구명 보트의 고장, 선장과 승무원의 직업의식, 사명의식의 결여등등 작은 요인들이 차곡차곡 쌓여 재난을 키웠다고 한다. 세월호 선장의 입장에서 여러 변명이 나오지만 한 배의 선장은 그 배의 모든 인명 재산의 총책임자요 생사가 그의 손에 달려있다.

선장의 지혜로운 상황 판단과 과감한 명령이 내려졌다면 전원 구출할 수 있었다는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모든 걸 정해진 지침과 규칙대로 조치했더라면 한명도 희생자를 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 자신이 먼저 배를 떠났고 구조된 뒤 선장 신분을 숨기고 남들은 죽어가는데 젖은 돈이나 말리고 있었다니 도저히 이해되지 않는 처신이었다. '선장은 선박에 급박한 위험이 있을 때에는 선박 및 화물을 구조하는 데 필요한 조치를 다해야 한다'는 규정도 어겼다.

1912년 4월 빙산에 충돌해 1,500여명이 사망한 타이타닉호의 에드워드 스미스 선장은 침몰 직전까지 승객 구조를 위해 노력하다가 배와 함께 최후를 맞았다. 플라밍 엔터프라이즈라는 화물선의 헨릭 컬트 선장은 1951년 12월 태풍으로 배가 기울어지자 승객과 승무원들이 다 구조될 때까지는 물론 배를 인양해 갈 예인선이 올 때까지 5일간이나 남아 있다가 생환했다.

반면 2012년 1월 암초에 부딪쳐 32명이 사망한 유람선 코스타 콩코르디아호에서 탈출한 선장은 직무유기죄로 2,697년 형이 구형됐다. 한 사람의 판단착오, 오판, 무능, 불성실로 오는 손실이 얼마나 심대한가!

그 위치와 영향은 지대하다. 수많은 사람을 살리기도 하고 죽이기도 한다. 이 사회에 이런 책임적 존재로서 나 한 사람이 된다는 것은 엄청난 큰 사명이요 소명이다. 8년 전 세월호를 경험했음에도 그 이후 대한민국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여전히 안전불감증, 불법과 편법과 부조리가 만연한 나라다. 물질적 성장에 비해 정신은 황폐하기 짝이 없다. 이런 모순을 극복하기 위해 모두가 각성하지 않고서는 또 다른 이태원을 막기가 어렵다. 우선은 지도자와 공직자들이 가장 큰 책임의식을 통감해야겠지만, 특정 세력이나 특정인에게 마녀사냥 하듯이 책임을 전가함으로써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내지 못한다면, 공동체 전체가 대오각성하지 못한다면 153명의 희생은 헛된 죽음이 되고 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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