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주성-진주 국화작품 전시회
진주성-진주 국화작품 전시회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08 16: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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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
윤위식/수필가·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 회원-진주 국화작품 전시회

진주 농식품 박람회장의 바깥에 영롱한 단풍의 가로수를 줄 세워 놓고 국화꽃 작품 전시회가 진주의 농익은 가을을 마음껏 풀어낸다. 전시된 분재 또한 보는 이의 넋을 뺀다. 대뜸 나오는 감탄사 와! 다음의 말이 ‘이게 도대체 말이 되나’다. 보는 순간, 유체이탈한 정신은 어느 시골 마을 앞의 오륙백 년 묵은 느티나무 앞에 선다. 장정 네댓 명이 팔을 벌려도 손끝이 닿을락 말락 한 웅대한 느티나무를 보고 있다. 농번기의 흙 묻은 땀도 식히고 마을의 대소사도 의논하던 그 느티나무가 분명한 것 같은데 진한 주홍빛으로 단풍이 곱게 물들어 황홀경을 이룬다. 거뭇거뭇한 얼룩은 어디에도 없다. 화공이 울고 갈 비색으로 물들었다. 이게 어찌 소사나무 분재란 말인가. 홀려도 예사로 홀린 것이 아니다.

눈을 껌뻑거리고 다시 본다. ‘좋다, 하늘을 못 안으면 땅이라도 실컷 품자 이만하면 족하지’하고 풍성한 허리춤을 치마끈으로 질끈 동여매고 펑퍼짐한 엉덩이를 깔고 거울 앞에 앉은 무르익은 아낙이다. 진홍색의 단풍에서 분 냄새가 난다. 정신을 가다듬으려고 시선을 돌리고 심호흡을 해본다. 국화 향기에 취한다. 무릉도원이다. 숙모님 혼자 하시던 초가지붕을 언제 이엉을 걷어내고 저렇게 국화꽃을 피워 빈틈없이 덮었을까. 이건 아닌데 하고 둘러본다. 임진, 계사년의 피맺힌 원한, 칠흑 같은 밤이면 통곡을 하고 만월의 밤이면 탄식을 하던 진주성의 혈흔은 성혈의 꽃이 되어 촉석 문루의 지붕까지 송이송이 국화로 피어났다. 온갖 동물들도 국화꽃으로 살아났다. 아무리 정신을 가다듬어도 여기는 별천지다. 진주성이 분명한 것 같으니까 석가탑은 아닐게고 진주박물관 앞의 국보 105호인 범학리 3층 석탑인 듯한데 5층 국화 탑이니 이를 어쩌나. 무단이탈한 내 정신을 어디서 찾나. 정신은 이미 미아가 되어 국화 동산을 지나 세월을 건너뛴 노거수의 숲길을 헤매고 있다.

방풍림 같기도 하고 비보의 숲인 것 같기도 한데 밑둥치는 고목인데 잎은 송두리째 샛노란 국화꽃이다. 네덜란드의 풍차가 고국이 그리워서 돌지 않고 외로운데 사방천지의 국화가 포근하게 감싼다. 무엇을 나누어 주려고 저토록 풍만하게 피었을까. 무엇을 꿈꾸며 저렇게 송알송알 모여앉아 가을 햇살을 품고 도란거리나. 보고 보아도 청순하고 우아한 자태로 기품있게 피워냈다. 누구의 손길이 이토록 맵짤까. 숱한 밤 지새운 열꽃이어라. ‘한 송이의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봄부터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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