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민칼럼-반아별서(半啞別墅)
도민칼럼-반아별서(半啞別墅)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21 16:56
  •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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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
신희지/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 교무처장-반아별서(半啞別墅)

지난 19일에는 남다른 출판기념회가 있었다. 2009년 지리산학교 시문학반의 인연을 박남준 이원규 두 시인과 14년 이어오다 지리산문화예술학교(지리산행복학교)에서 일착, 4인이 함께 시집을 엮었다. 여기까지는 그리 별다를 것이 없지만 지리산이 매개가 되어 만난 인연이어서일까? 그들의 출판기념회를 보며 지리산이 더욱 명산이라는 생각을 한다. 지리산으로만 깃들어도 원한과 비애가 치유가 되는 그래서 사람들은 한사코 지리산으로 향하는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사람을 참 크게 만든다. 속 좁아지려고 하다가도 지리산에서 무언가를 시작했다는 자부심이 들면 대범해진다. 그래서 지리산을 앞에 턱 갖다 붙이면 문학도 밥상도 초가집마저도 웅장하고 깊은 반열에 오르기까지 한다. 아무나 이름 붙여도 지리산은 받아준다. 그 이름값을 제대로 하려고 온 힘을 쏟으면 그 과정만으로도 봐주기 때문이다.

네 사람의 시인도 마찬가지로 조심스럽게 시인의 길에 들어섰다. 그들의 시를 받아들고 해설을 쓴 김남호 시인은 첫 문장에 ‘눈물겹다’라고 썼다. 요즘 더러 암호 같은 시들이 난무하고 그렇게 낯설어야만 시적 호흡이라고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이들의 시는 우리에게 익숙한 삶과 슬픔들을 때로 농익은 체, 때로 날 것 그대로 던져놓고 있다.

시집의 이름을 내어 준 가장 연장자인 이남희 시인은 <반아별서-半啞別墅> 마지막 연에서 -자주 할 말을 잊어도 좋아라, 은은한 솔 향 뿜으며 반야별서 지키는 세 그루 파수꾼, 사흘 밤낮 베갯머리송사로 피워 올린 마지막 선물-이라고 귀는 열고 입은 다문 반벙어리로 살겠다는 겸손하고 낮은 자세를 이야기 한다. <겸상> <지구는 여전히 돌고 있네>라는 시에서는 나이 들어가는 자신의 모습을 덤덤히 그려내기도 한다. 그 옛날 홍대 미대를 나와서 화려한 청춘을 살아온 그녀가 ‘늙음’을 받아들이는 순간, 그녀의 깨달음은 절정을 이룬다.

그 뒤의 안순자 시인은 시 한편으로도 우리의 마음을 적시고 만다. 출판기념회 날 그녀가 낭송한 <걷고 싶다>의 한연 한연이 참 절절하다. -사랑하는 사람과 걷고 싶다, 땅을 밟고 같은 하늘을 보며 걷고 싶다, (중략) 내 자식 등에 업고 고생했다 아가야, 마음고생 시켜 미안했다 아가야, 조아리며 걷고 싶다 (중략) 흰 속살이 보이도록 짧은 미니스커트 입고, 뭇 남자의 시선 받으며 당당하게 걷고 싶다- 그냥 시만 읽으면 무슨 말인가 싶겠지만 휠체어를 탄 시인의 모습을 보는 순간, 우리 모두 숙연해 질 수 밖에 없다. 거제시의원을 하고 전 거제시장애인총연합회회장을 하면서 <자랑질도 급이 있다>라는 시에서는 -최종학력 이야기만 나와도, 가슴은 철렁 바이킹을 탄다-라고 시작한다. <철자도 모르면서 시를 쓴다고> 당당하게 나는 아마추어 시인이라고 말하기까지 시인이 겪어낸 인생에 고개가 숙여진다.

시집에서 가장 유쾌하고 더러 쓸쓸한 서만임 시인은 시집 앞머리에 인터넷에 댓글 한번 폼 나게 쓰고 싶어 시를 공부했다고 적어놓았다. 지금은 참조은재가복지센터 센터장을 하고 있지만 한때 하동읍내 속옷 파는 사장으로 <어느 무면허 의사의 처방전>에서 손님들이 오면 척보면 안다고 일갈한다. -(중략) 갱년기 주부의 우울증에는, 잠자리 날개 같은 잠옷을 처방하고, 똥배가 고민인 사람에게는 거들과 올인원을, 아내의 샤워 소리가 칼 가는 소리로 들리는 남편에게는 정력 팬티를 처방하고 (중략) 나는 안 봐도 다 안다 다 보인다-고 하는 시를 읽고 어찌 웃음이 나오지 않겠는가! 그렇지만 웃음에만 머무는 게 아니고 한껏 멋을 부린 아버지의 꺾어 신은 구두를 보고 자식들 건사하느라 노동에 절은 아버지의 새끼발가락 굳은살에 -도대체 굳은살은 굳은 결심을 몇 번이나 해야 생기는 걸까 살아보니 굳은살이 더 아프다- 라고 속 깊은 말을 건넨다.

마지막 구칠효 시인은 가장 힘들 때 지리산학교를 찾아왔다고 한다. <속을 비운 둥구나무>처럼 -(중략) 엔지니어 직장생활 설운 맘 십 년에 무슨 바람이 불어 오막살이 벤쳐회사 대표로 오 년, 순박한 직원과 믿고 보낸 가족들, 쌀뒤주 바닥 긁히는 통장과 빈약한 계약서 몇 개를 들고 어색한 표정으로 지점장을 만나고 나와, 넥타이를 풀며 은행 정문 돌계단에 쪼그려 앉았다, (중략) 이 맘 저 맘 안아주고 삭히며 그대로 서있을 것이다, 속을 다 비울 때까지-라고 이제는 말한다. 차세대기술을 개발하는 바로텍시너지 대표로 살아가는 시인을 넉넉하게 이끌어 주는 건 시의 힘이다. 이렇게 온 몸과 마음으로 시를 말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있다. 도시에서 너무 속 좁게 사시는 양반들이 이런 세계를 좀 느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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