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계찰괘검(季札掛劍)
칼럼-계찰괘검(季札掛劍)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1.28 16:34
  • 1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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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
전경익/전 경상국립대학교 토목공학과 겸임교수-계찰괘검(季札掛劍)

독일의 인류학자 랑케(Ranke:1836~1916)가 산책하던 중 동네 골목에서 한 소년이 울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우유배달을 하는 소년이었는데 실수로 넘어지는 바람에 우유병을 통째로 깨뜨린 것이었다. 소년은 깨진 우유를 배상해야 한다는 걱정에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었던 것이다. 랑케는 울고 있는 소년에게 다가가 말하기를… “얘야, 걱정하지 마라라. 지금은 내가 돈을 가져오지 않아서 너에게 돈을 줄 수 없지만 내일 이 시간에 여기 나오면 내가 대신 배상해주겠다. 소년과 이런 약속을 하고 집에 돌아온 랑케는 한 자선사업가가 보낸 편지를 받았다. 편지 내용은 역사학 연구비로 거액을 후원하고 싶으니 내일 당장 만나자는 내용이었다. 랑케는 너무 기뻐서 어쩔 줄 몰랐지만, 순간 소년과의 약속이 떠올랐다. 랑케는 편지를 보낸 자선사업 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지금 당장 먼 길을 떠나야 했기 때문에 소년과의 약속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 되고 말았다. 그런데 랑케는 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망설임 없이 자산사업가에게 다른 중요한 약속이 있어 만날 수 없다는 편지를 써서 보냈다. 랑케는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소년과의 약속을 지켰다. 랑케의 편지를 받은 자선사업 가는 순간 상당히 불쾌했지만 전후 사정을 알게 된 후에는 더욱 랑케를 신뢰하게 되었고, 그에게 처음 제안했던 후원금 액수보다 몇 배나 더 많은 후원금을 보냈다. 랑케에게는 역사학 연구보다 한 소년과의 약속을 지키는 것이 어느 것보다 더 소중했던 것이다. 눈앞의 커다란 이익을 저버리면서까지 악속을 소중히 지켰기에 소년은 절망 속에서 희망을 품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자선사업 가는 랑케의 더욱 든든한 후원자가 되었던 것이다.

기원전 560년, 옛 중국 오(吳)나라 임금 제번(諸樊)이 부왕의 복상(服喪) 기간을 끝내자 왕의 다음 자리를 넷째아들 계찰에게 넘길 계획을 세웠다. 이러한 부왕의 심중을 헤아린 첫째와 둘째는 오나라를 떠나 남방 오랑캐 땅으로 피했다. 그러자 왕 자리에 관심이 없었던 계찰은 셋째형이 왕위에 오를 때 까지 자리를 피했다. 때가 되어 부왕 제번이 죽고 계찰을 왕의 자리에 올리려고 하자, 그는 그 집을 버리고 연릉이라는 시골로 내려가 농민이 되어 밭을 갈며 살았다. 그런 계찰이 중원의 제후국으로 사신의 임무를 띠고 북쪽으로 출발할 때였다. 맨 처음 서국(徐國)의 군주를 만나 후한 대접을 받았다. 그런데 서국의 군주가 계찰이 허리에 차고 있던 검(劍)을 보고 갖고 싶은 마음이 있었으나 입 밖으로 표현을 하지 못하는 듯 보였다. 계찰이 그 마음을 읽고 속으로 서국군주의 뜻을 알아챘다. 그러나 중원의 제후국을 들러 사신의 임무를 수행해야 했기 때문에 사신의 징표이기도 한 그 검을 서군(徐君)에게 주지 못했다. 계찰은 마음속으로 ‘모든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흔쾌히 선물하겠노라.’다짐하고 떠났다. 그 후, 사신으로서의 순회 임무를 마치고 귀국길에 올라 서국을 지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그 때는 서군(徐君)이 이미 죽고 난 다음이었다. 그래서 그는 서군의 무덤을 찾아가 허리에 찬 보검을 풀어 사당에 걸어 놓고 오나라로의 귀국 길에 올랐다. 그러자 이를 본 계찰의 수행원이 “서군이 이미 죽었는데 그 보검을 누구에게 주신 것입니까?”라고 물었다. “비록 서군은 죽었으나 내가 이미 보검을 서군에게 주기로 마음속으로 허락했는데, 지금 비록 그가 죽었다고 해서 그 마음을 바꿀 수 있겠느냐?”라고 대답하였다. 이렇게 하여 신의를 중히 여기는 것의 대명사로 ‘계찰괘검(季札掛劍)’이라는 고사(古事)가 생기게 된 것이다. 마음과의 약속은 자신을 두고 하는 맹서이니 만큼 약속을 깬들 아무도 탓할 자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가장 진정한 약속은 자신과의 약속에 충실 하는 그런 약속이 아닐까 한다.

약속이란 장래의 일을 상대방과 미리 정하여 지킬 것을 다짐하는 것이다. 신의(信義)란 믿음(信)과 의리(義)를 말한다. 참으로 훈훈한 미담이 아닌가! 한다. 인생을 살아가면서 우리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약속하며 쉽게 헤어지기도 한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면서 슬픈 일 가운데 하나가 각계각층 특히 정치권에서 존경할 만한 인물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점이다. 약속을 지키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세태가 되었다. 약속을 지키는 따뜻한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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