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을 열며-나는 함께 김장 담그는 시간이 좋다.
아침을 열며-나는 함께 김장 담그는 시간이 좋다.
  • 경남도민신문
  • 승인 2022.12.01 17:23
  • 14면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
박인숙/진주보건대학교 간호학부 교수-나는 함께 김장 담그는 시간이 좋다.

항상 이맘때쯤이면 겨울의 숙제인 김장을 하곤 한다. 솔직히 말하면 김장을 한다기 보다 김장을 하는 곳에 함께하고 있다. 살림을 똑 부러지게 사는 지인들 속에서 행여 도움이 되지 못할까하여 할 수 있는 일들을 찾아 열심히 몸을 움직인다.

김치는 대략 3,000년 전부터 우리 생활 속에 자리 잡고 있었다. 지금의 김치는 고춧가루가 들어가 붉은 김치이지만 예전에는 고려시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에는 순무장아찌와 소금절임에 대한 기록이 있고, 향신료인 천초, 회향 등으로 김치절임 형태인 붉지 않은 김치가 주를 이루었다.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는 임진왜란 이후 고추가 도입되어 다양한 음식에 변화가 생겼다. 고추를 사용하니 김치의 부패를 방지하고, 자연스럽게 소금의 양도 줄여드는 여러 종류의 붉은 김치가 생겨 난 것이다.

김치는 공기와 주위의 온도 등 자연환경에서 각종 미생물이 활동하는 발효라는 놀라운 과학이 숨 쉬는 음식이다. 숙성된 김치에는 내염성의 젖산균으로 독특한 맛을 이룰 뿐만 아니라 아미노산과 호박산을 생산하고 비타민C도 생겨 항암효과도 있다.

김장을 함께하는 지인들의 자제는 대부분 첫째가 고향을 떠나 국내·외 직장을 잡고 있고, 둘째는 신기하게도 첫째가 있는 곳에서 직장이나 학교를 다니다 보니 부부만 사는 가족형태가 많다. 식구가 줄어 해마다 이젠 김장을 해도 먹을 사람이 없다고 말하며 자녀를 그리워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김장을 담는 배추 포기는 줄여들지 않는다. 여러 해를 똑같은 배추포기로 김장을 한다. 김장을 하고 각자 가지고 온 김치통에 담아가는데 몇 개 되지 않는다. 그러니 김장을 한 양에 비하면 각자 정말 적게 가지고 가는 것이다. 그러면 그 많은 김치를 누가 먹는단 말인가? 바로 이웃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핵가족이 되고 있는 중·장년인 우리 세대 못지않게 혼자 지내시는 어른이 많다. 자녀가 있어도 다들 오래전 부모의 품에서 벗어나 각자의 터전에서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앞집 어르신을 챙기면 그 옆집 어르신도 신경이 쓰이고, 그렇게 김장을 하고 난후 나누어 주는 어르신이 늘어가고 있다. 꼭 어르신만 계시는 것도 아니다.

직장 때문에 와있는 자제와 비슷한 연령대의 청년을 보면 자식 같은 마음이 앞서나 보다, 아니 다르게 유추해보면 「내가 이렇게 살뜰히 챙겨주면 타지의 누군가가 내 자식도 챙겨주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저절로 마음이 가는 건지, 반찬이 없어도 김치만 있으면 무엇을 해서라도 먹을 수 있다며, 굳이 달라고 하지도 않는데 챙겨 준다. 김장을 함께하는 지인 중에는 원룸 임대를 하는데, 냄새가 날까봐 여러 번 정성껏 포장하여 모든 원룸의 문고리에 김치를 걸어두고 맛있게 먹기를 바라며 행복해 한다.

김치를 걸어두는 것이 아니라 ‘사랑’, ‘정’, ‘따뜻함’을 나누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김장을 함께 살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소중한 나눔’이라고 본다.

올해는 따뜻한 날씨로 김장을 조금 늦게 12월 초에 하기로 하였다. 이번에도 누구네 집에서 언제 몇 시부터 시작할지와 각자의 역할을 나누었지만, 그 누구도 김장 배추 포기를 줄이자는 말 한마디 없다.

‘소중한 나눔’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함께 김장 담그는 시간이 좋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